대체로 높은 직위의 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강호의 아취가 없고,
有繁華之事者, 無蕭散之態, (유번화지사자, 무소산지태,)
화려한 일이 있는 사람은 한적하게 지내는 자태가 없게 마련이다,
得於此而失於彼, 志乎小而遺乎大也. (득어차이실어피, 지호소이유호대야)
어느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를 잃게 되고 작은 것에 뜻을 두면 큰 것을 놓치게 되는 법이다.
[해설] 이 글은 성현이 1489년(성종20) 음력 8월 17일에, 8세 연하의 조카 성세명(成世明)의 초청을 받아 읍취당에서 노닌 뒤에 지은 기문에 나오는 말이다. 읍취당은 허백당의 백씨(伯氏)인 성임(成任)이 한강 가에 지은 정자다.
허백당은 이 글에서 읍취당 주변의 12경승에 대해 서술한 다음, 인생에 있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일에만 급급하지 말고 강호와 산림에서 노니는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양립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다 얻을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임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절제를 조언하고 있다.
허백당은 또 병으로 고향 전주(全州)에 칩거하고 있는 벗, 독수당(獨秀堂) 최숙문(崔淑文)을 위해 기문도 지어주었는데, 그 글의 말미에 동중서(董仲舒)의 ‘치각설(齒角說)’을 인용하여 세상일에 매몰되어 있는 허백당 자신보다 향리로 물러나 있는 벗이 더 풍요롭고 소중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숙문은 자가 주경(周卿)으로, 허백당과는 30년 심우(心友, 마음을 알아주는 벗)이자 아들 성세창(成世昌)의 소싯적 스승이기도 하다. 최숙문은 향리에서 학문에 몰두하고 행의를 닦아 전주의 예산 서원(禮山書院)에 종향(從享)되었고 허백당은 몰후에 사화(士禍)의 여파를 입기도 했으니, 저자의 말도 그냥 한 번 해본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백발은 멀리 있지 않다. 어, 어, 어, 하다가 문득 주변을 돌아보면 홍안의 친구가 완연한 중년 신사가 되고 있고,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에는 서리가 앉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잘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