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극복의 비결은 ‘자신감’
산재 극복의 비결은 ‘자신감’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0.01.27
  • 호수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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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근로자 봉평열 씨

 

1997년 11월, 승승장구를 거듭해오던 한국경제에 IMF라는 사상초유의 위기가 닥쳤다. 갑작스런 이 폭풍에 유수의 기업들과 건실했던 중소기업들이 한순간 무너져 갔다. 심지어 동네 소규모 점포마저 연이어 닥친 불황에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이런 상황 속에 수많은 가장들이 평생을 바친 직장을 등지고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 거리를 헤매야 했다. 봉평열(62)씨도 이들 중 하나였다. 생활고에 대학마저 중퇴를 해야 했던 큰 아들을 보고 그는 망설임 없이 건설현장을 찾았다.

고된 일이었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에 감내해가며 묵묵히 일한지 3개월여가 됐을 무렵, 그는 현장에서 추락재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신 걸을 수 없는 몸이 됐다.

생활고에 건설현장 찾아

IMF 체제에 접어든지 3개월, 가게엔 거짓말처럼 손님이 뚝 끊겼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임대료를 낼 형편도 되지 않았다. 갈수록 기울어가는 가세를 걱정하던 큰 아들은 대학마저 중퇴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늘 웃음꽃이 피었던 가정이었다. 그런데 이젠 웃을 여유조차 사라지고 만 것이다. 가장으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당장 무엇이라도 해서 가정을 지켜야만 했다. 배움이 적고 기술을 익힌 것도 없는 이가 갈 곳은 많지 않았다. 무작정 인력사무소를 찾았고 그곳에서 대전의 모 아파트 건설현장을 소개받았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당장의 생계걱정을 덜게 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안정 속에 3개월여가 지났다. 1998년 6월 18일, 그날 그는 16층 콘크리트 타설 공정에 배속됐다. 공정 내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일을 하던 그때 순간 발을 헛디뎠다는 느낌이 났다. ‘앗차’하는 생각이 들 사이도 없이 이미 그의 몸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추락재해 입어 하반신마비환자 돼

사고발생 3일 후, 봉평열씨는 혼미한 의식 사이로 파고드는 극심한 다리통증이 느껴졌다. 애써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16층 옥상에서 추락한 자신이 살아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의아한 눈빛으로 병실을 둘러보는 그의 곁으로 가족들과 동료 근로자들이 달려왔다.

동료들의 말을 빌면 그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었다. 당시 16층에서 떨어졌던 그는 9층에 설치되어 있던 낙하물 방지망에 걸렸다가 튕겨져 9층 내부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하늘이 도운 것이다. 천운에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를 보고 절망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추락과정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척추 7, 8, 9, 11번이 골절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됐다.

노력 거듭해가며 자신감 얻어

세 아들 중 큰 아들, 둘째 아들이야 이제 성인이라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막내 아들은 겨우 중학교 3학년이었다. 아버지의 역할이 꼭 필요한 때인데 이런 시기에 뒷바라지는 못해줄망정 짐이 됐다는 생각이 그를 휘감았다.

하지만 장애와 아픔을 이유로 멈춰있을 여유가 없었다. 장애우라도 익힐 수 있는 기술이라면 닥치는 대로 배웠다. 어떻게든 가정을 위해서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활병원에서 가르쳐 주는 인장기술 등 갖가지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50이 넘은 나이에 배움의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런 노력의 과정 속에서 비록 장애우지만 손기술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봉평열씨는 귀금속공예를 4년여에 걸쳐 배우고 있다. 공방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이지만 단지 통증을 잊기 위해 배운 얕은 실력이라며 겸손히 말한다.

봉평열씨는 귀금속공방에서 인기가 많다. 그동안 배운 인장이나 공예 기술 등을 활용해 동료 산재환자들의 도장을 파주는 것은 물론 반지나 목걸이도 틈틈이 선물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작은 소망은 언젠가 여유가 생긴다면 자신만의 귀금속공예공방을 여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쉽사리 이루어지진 못하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며 그때를 준비하고 있다.

“저 역시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좌절감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시도를 해봤고 지금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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