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능인- (주)프렉코 지춘근 대표

“돌아보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것도,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중소기업에 들어간 것도 꽤 괜찮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고용노동부는 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주)프렉코 지춘근(45세) 대표를 선정했다.
지춘근 대표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휴대전화 힌지를 독자 개발하여 국산화에 성공,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휴대전화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데 일조를 한 기능인이다.
중소기업에서 종횡무진 활약
지 대표는 1966년 인천에서 3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어릴때부터 자신의 일은 스스로 챙겨야 했고 그래서 진로도 일찍 결정하게 됐다.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내세울만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닌 제가 빨리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기능, 기술을 익히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거리낌없이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1982년 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한 그는 다양한 기계와 기능훈련을 경험하면서 기술인으로서의 꿈을 키워간다.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끈기와 노력만큼은 타고 났던 지 대표. 그를 아끼던 담임선생님은 중소기업에서 배울 것이 더 많을 것이라며, 졸업 후 반도체금형 전문기업인 세원금형에 입사할 것을 추천했다.
입사 당시의 월급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돈은 중요치 않았다. 일한 만큼 실력은 늘어갔고 대우도 좋아졌다.
군 제대 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그는 1990년 크라운정공으로 이직한다. 최신의 설비환경과 도전적인 회사분위기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해 최연소 부서장으로 초고속 승진시켰을 정도였다.
휴대폰 힌지 국산화 성공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지춘근 대표는 그동안 배운 기술을 토대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8세였다. 6평짜리 상가건물을 임대해 1인 기업으로 유진정공을 설립했다.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했던 덕에 세원금형과 크라운정공에서 주문을 받으며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갔고, 곧 반도체 금형과 자동차장비 생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중국과 동남아기업들이 반도체 금형 분야에 뛰어들자 지 대표는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 때 모 기업의 권유로 휴대폰 힌지(경첩)를 처음 접하게 된다. 당시 힌지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상황.
지 대표는 일본 제품을 분석해본 결과, 자신의 기술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힌지 독자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리고 2001년 드디어 국산화에 성공한다. 지 대표는 이를 재창업의 의미로 생각하고 회사를 법인전환하며 상호도 변경했다. (주)프렉코의 탄생이었다.
“휴대폰 힌지 개발은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초정밀 금형기술의 노하우가 집약된 결정체입니다. 제가 기능(생산)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힌지의 독자 개발은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론만이 아닌 반도체 금형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원스톱 생산 시스템으로 가격경쟁력 확보
(주)프렉코는 일본 제품의 60% 수준인 가격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했다. 설계, 금형, 성형, 후가공, 조립 등 모든 공정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진행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은 물론 품질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고 지 대표는 설명한다.
그리고 (주)프렉코는 기술력 확보를 위해 20명의 연구 인력을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노력으로 휴대폰 힌지 및 키패드, 반도체 장비 등과 관련해 60건의 특허 및 27건의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주)프렉코는 클릭힌지를 비롯해 기어힌지, 쿼티슬라이드 힌지 등 특수 힌지를 생산하고 있다. 클릭힌지의 경우 국내시장의 70%를 점유한 가운데, 지난해 매출액 211억원, 수출액 810만 달러를 달성했다. 어느새 충남을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자리잡은 것.
또한 (주)프렉코는 2011년 휴대폰 케이스업체를 인수하며 휴대폰 힌지와 케이스를 모듈화하는 신규사업으로의 진출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2의 도약을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성공요인
지 대표는 현재 인천시립전문대, 건양대 등과 산학협력을 체결해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지원해주고 있다.
“제가 단지 ‘사장님’이 되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능인으로서, 또 기업인으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성공이라면 성공이라 할 수 있겠지요. 기능과 중소기업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요즘 세태가 아쉽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둘을 소신껏 선택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꾸준한 노력을 해나간다면 분명 성공할 것이라고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저 역시 기능과 중소기업, 그 두 단어가 성공의 키워드였습니다”
아직 젊고 가야할 길이 멀다며 겸손해 하는 지춘근 대표. 하지만 자신을 도전하는 삶으로 이끌었던 기능과 중소기업에 대한 자부심만은 인터뷰 내내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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