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근로자가 말하는 안전 | 서정옥씨
녹색수도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충북 청주. 가히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이곳은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청주의 진입로에서부터 시내까지 이어지는 가로수길은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 수차례 등장했을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녹색의 美’로 빛나는 청주에 최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자랑거리가 알려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산재근로자 서정옥(54) 씨다.
그는 산재를 입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역의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보다 더욱 힘든 이들을 돕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불러온 뇌출혈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1년. 서정옥씨는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모 변압기 제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직원이 30여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었지만 성실한 직원이 많았고, 제품의 품질 또한 우수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IMF로 촉발된 경기침체의 여파가 계속되면서 순식간에 이 작은 회사는 존폐의 위기로 내몰렸다. 급기야 회사는 부도를 맞았고, 화목했던 직원들간의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관리 차장으로 직원 및 공정 전반을 총괄 관리하던 서정옥씨는 큰 정신·육체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1987년 입사 이래 회사에 온 청춘을 다 바친 그였다. 이렇게 회사가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현장 내 관리감독에 더욱 철저를 기하는 한편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도록 직원들을 다독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직원들간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작은 체육대회를 하나 마련했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경영진들은 행사 자체에 냉소만을 보냈다. 시선이 따가웠지만 그는 불편한 마음을 무릅쓰고 행사를 강행했다. 직원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라도 선사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 계획은 끝내 기대했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려 퍼질 때 그는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운동장 한켠에서 쓰러졌다.
청춘을 바친 회사를 나오다
인근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 그의 병명은 뇌출혈(지주막하 출혈)로 판명이 났다.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였다. 상급 병원에서의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병원 의사의 권고에 따라 그는 서울 K의료원으로 올라와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았다. 하지만 환하게 웃을 수는 없었다. 뇌출혈을 겪은 그의 몸은 예전의 그 튼튼했던 몸이 아니었다. 감각과 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졌고, 운동 신경도 많이 약화됐다. 6개월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이 있는 청주로 내려와 인근 병원에서 2년여간 재활치료에 매진을 했다.
그나마 다치기 전부터 배드민턴 등의 운동을 꾸준히 했던 터라 회복 속도는 빨랐지만 예전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젊음을 다 받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산재를 넘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다
그의 뒤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온전치 않은 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실패가 계속됐고, 점차 지쳐갔다.
그러던 중 그는 근로복지공단과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충북 청주 소재)에서 실시하고 있는 산재근로자 사회적응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부족한 능력을 보완한 후 다시 취업에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이에 그는 용기를 내어 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서정옥씨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장애인활동 도우미’라는 일을 하고 있다. 복지관의 소개도 있었지만 자신 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도전을 했다.
또 신앙생활에도 관심을 갖게 돼 인근 교회에서 서리집사로 활발한 목회 활동하고 있으며, 배드민턴 등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특히 배드민턴의 경우 충북지역 장애인 대표선수로 선발돼 전국 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장애를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벅찰 만도 하 것만 그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산재의 고통을 노력으로 이겨냈듯, 새로운 희망 역시 노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의 아픔을 넘어 이제는 우리사회를 비추는 햇살이 되고자하는 서정옥씨. 그의 따뜻한 열정이 미래를 두려워하는 많은 산재근로자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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