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내 하청근로자는 불법파견근로자, 파견법 적용해야
불법 파견근로 사용의 관행을 뒤엎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소송은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인 Y기업에서 일하다 해고된 최모씨가 제기했다. 2005년 해고당 시 최씨는 현대차에서 2년이 넘게 일했었다. 이에 최씨는 파견법을 근거로 부당해고 구제신청 및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파견법에서는 동일 사업장에서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원청업체에 직접고용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앞서 1·2심은 “사내하청은 파견이 아닌 도급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도급은 파견근로가 아니어서 파견법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2010년 7월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근로자는 파견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에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취지대로 원고승소 판결했고, 대법원이 이번에 다시 사내 하청 근로자를 파견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불법파견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 최씨를 불법 파견직으로 보면서도 파견법에 적용받도록 한 것. 올 8월부터 파견법 개정안이 적용돼 불법 파견이 확인되면 2년을 기다리지 않고 발견 즉시 사용사업체에 고용 의무가 부과되는데, 이번 판결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급과 파견의 차이는 업무지휘감독권에 있어
제조업의 경우 파견근로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어, 도급이라는 명목아래 불법 파견이라는 고용형태가 주를 이뤘었다. 이에 불법 파견을 파견법 테두리에 포함한 이번 판결이 국내 산업현장에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도급과 파견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원청에서 노무를 지휘·감독하는지 여부다. 도급은 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에 대한 노무 지휘·감독권을 갖는 반면 파견근로는 원청업체의 지시와 감독에 따라 일을 한다. 따라서 도급과 파견의 차이를 구분하려면 업무지휘 체계 등을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대법원은 최씨가 원청 근로자와 함께 일했고, 그에 대한 작업 지시권 및 결정권을 원청이 행사했다고 봤다. 또 근로시간과 출퇴근 등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도 원청이 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최씨의 경우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으로 봤고, 파견법 적용대상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불법파견이 왜 파견법의 적용대상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 법원은 적법파견만 파견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고 했다. 제조업의 불법파견을 암묵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0년 대법원은 “적법한 근로자 파견에만 파견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파견근로자의 남용을 막자는 파견법의 취지를 감안한 판결이었다. 이번 판결 역시 이같은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영계 “이번 판결은 1인에 대한 판결일 뿐”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 중 41.2%가 사내하청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사내 하청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4.6%인 32만 6,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사내하청 근로자는 대부분 제조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사건의 발단이 된 현대차의 경우 내부 사내하청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2%인 8,000여명을 차지한다. 단순한 계산으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발생되는 비용은 2,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산업현장으로 보면 사내하도급 근로자 모두를 원청업체들이 직접 고용할 경우 연간 5조4,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이번 판결에 대한 원청기업들의 부담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경영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소송 당사자 1인에 대한 판단일 뿐”이라며 이를 확대 해석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번 판결로 전체가 바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대차, 기아차, 금호 타이어 등에서 2,000여명이 정규직 전환 집단소송을 낸 상태다. 또 이번 판결로 앞으로 유사 소송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점에서 보면, 현재로써는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한 고용 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중재가 절대적으로 필요”
만약 이번 판결로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 관행이 변할 경우 원청기업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내하청근로자들을 모두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지만 원청기업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일부 노동계에서도 기업에 막대한 비용부담을 주면서 오히려 고용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두 번째는 하청근로자에 대한 작업지시 및 감독을 하도급업체 사업주를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원청기업들이 사내 하청근로자들을 정규직화 시키지 않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 이날 판결 후 현대차 측에서도 이러한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마지막으로 근무형태를 기간제 등으로 제한해 채용하는 방법이 있다. 대법원은 최씨와 관련한 판결을 하면서도 고용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현행 파견법에도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 사업장 내 동종 또는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돼있을 뿐, 고용 형태에 대한 별도규정은 없다. 이에 직접 고용을 따르되 기간제 근로자 등 근로형태를 정규직과 다르게 해서 채용하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모든 근로자들을 정규직화 하는 것에 비해서는 다소 줄어들 뿐, 어느 정도의 비용부담은 불가피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사회적 비난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원청기업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번 판결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에서는 향후 고용관행의 개선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용관행 자체가 급변하면 산업현장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중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각계의 입장이 완전히 갈리는 가운데, 향후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내놓게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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