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철저히 조사해 관계자 엄중 문책”

우리나라 원자력 안전관리에 있어선 안 될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최근 고리 원전 1호기의 전원이 10분 이상 끊기고, 즉시 대체 가동돼야 할 비상 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전원 공급 중단 상태가 조금만 더 길어졌더라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 될 뻔했다. 실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것. 문제는 이런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관계자들이 상부기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사고를 조용히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 원자력안전관리 총괄 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물론 고리 원전 1호기 관리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조차 한 달이 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 은폐될 뻔 했던 사고는 우연히 관련 정보를 접한 지방의회 의원이 경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외부의 압박이 가해지자 고리발전소측이 뒤늦게 실토를 한 것.
그간 정부가 수차례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공인했던 터라 이번 사태가 불러온 파급력은 상당하다. 사실상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신뢰성이 일거에 무너졌다고 볼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넘어 배신감을 던져준 이번 사고의 경위와 정부의 후속 대책을 정리해봤다.
한 시의원의 책임감이 사건 밝혀
원전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달 9일 오후 8시34분경 고리 1호기의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던 중 외부 전원 공급이 끊어지는 동시에 비상디젤발전기까지 작동하지 않아 발전소 전원이 12분 동안 들어오지 않는 이상이 발생했다고 13일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이 넘은 시점에서의 발표였다. 규정상 고리원전측은 원자로에 전원 공급이 끊기면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과열 위험성이 있는 만큼 즉시 백색 비상경보를 발령하고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보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고리원전 책임자들은 이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은폐를 선택했다.
조용히 은막 뒤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이 사고가 알려지게 된 것은 김수근 부산시의원의 공이 컸다. 김 의원은 이달 초 우연히 인근 음식점에서 옆테이블에 앉은 고리원전 관계자들의 대화를 통해 고리 1호기의 이상 징후를 전해 들었다. 이에 김 의원이 본격적인 확인작업에 들어가자 고리원전은 뒤늦게 이 사실을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위원회에 보고했다.
조직적 은폐정황 드러나
한수원의 사고 사실 발표 후 이뤄진 원자력안전위의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설마 했던 발전소 차원의 조직적인 은폐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안전위는 당시 고리 제1발전소장이었던 문병위 한국수력원자력 위기관리실장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안전위에 따르면 문 소장은 조사에서 정전 사고가 난 뒤 “내가 상부에 보고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고 윗선으로 보고는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다.
또 문 소장 등 책임자들은 사고 발생 직후 의견교환을 통해 사고사실을 숨기기로 하고, 현장에 있던 직원 60여 명에게 입막음 지시를 내렸다. 감독기관인 원자력안전위에서 파견된 현지 주재관은 퇴근 후였다. 이에 따라 다음 날 ‘정상’이라 적힌 허위 운행일지가 제출됐다. 그래서 다음 날 출근한 안전위 주재관과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직원들은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원자력 안전위, 안전성 강화대책 마련할 것
이번 사고를 계기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발 빠르게 사고수습 및 후속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수원은 15일 보고 누락 등의 책임을 물어 문 전 소장을 보직 해임했다. 또 지식경제부 홍석우 장관은 14일 ‘고리원전 1호기 정비중 전원상실 관련 발표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아울러 안전위는 지난 13일부터 원전 전문가 23명으로 구성된 현장조사단을 고리 원전에 파견, 보고 은폐 경위와 비상디젤발전기를 포함한 전력공급계통의 문제점 등을 조사하고 있다.
안전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고리 1호기는 모든 외부전원이 연결돼 원자로의 냉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등 안전하게 유지·관리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관계자를 엄중 문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상황 24시간 감시 시스템 등의 안전성 강화대책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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