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밀폐공간서 반복적인 일하는 게 원인

지난 12일 오전 8시경 서울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서울도시철도 답십리승무관리소 소속 이모 기관사가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과 도시철도노조 등에 따르면 이 기관사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평소에도 가족과 직장의 지인들에게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황장애란 현재 위험성이 없는데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여 자제력을 잃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질식감, 어지럼증, 심장박동수 증가, 구토, 떨림 등이 주요 증상이다.
지하철 기관사는 지난 2004년 공황장애가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될 만큼 이 질환에 대한 노출 위험이 심각한 직종이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같은 일을 하는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언제 사람이 불쑥 선로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자살에 대한 공포도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건강관리의 사각지대
기관사들의 정신건강관리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적응장애 등 신경정신질환의 심각성이 이미 2003년부터 문제가 됐던 것.
2003년 8월 서 모 기관사가 자살을 했고, 그로부터 보름 뒤 임 모 기관사가 같은 길을 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6년 8월까지 32명이 정신질환에 걸렸고 이중 11명이 산재승인을 받았다.
이같은 심각성은 각종 조사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톨릭대학교가 2007년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근무하는 기관사 836명을 상대로 특별건강검진을 한 결과, 기관사의 공황장애 유병률은 일반인의 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관사의 우울증 유병율은 일반인의 2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4배나 높은 비율을 보였다.
기관사의 건강이 곧 시민의 안전
이번 이 기관사의 자살을 계기로 서울도시철도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기관사들에 대한 정신건강관리 대책을 보완해 줄 것을 정부와 사측에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지하철공사 노조는 최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기관사들의 노동조건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노조가 요구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노조는 기관사들을 포함한 도시철도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직무스트레스 조사 및 역학조사를 노사공동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기관사 업무복귀 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조는 기관사 건강권과 시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1인승무제를 폐지하고, 아프면 쉴 수 있도록 현장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도노조의 한 관계자는 “기관사의 업무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수동운전을 비롯해 1명의 기관사에게 지하철 운전과 출입문 관리, 안내방송, 객실 민원 등을 모두 떠맡기고 있는 1인 승무제가 기관사들을 힘겹게 하는 대표 사례”라면서 “기관사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이들부터 시급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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