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과 관련된 진실이 밝혀질수록 경찰 수사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조현오 경찰청장이 사퇴하고 경찰에서는 관련자 문책, 112신고센터 개편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 곽모(28세, 여)씨가 조선족 오모씨에 의해 “성폭행 당하고 있다”고 경기경찰청 112신고센터에 신고한 것은 밤 10시 50분쯤이다. 오씨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납치됐던 곽씨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신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곽씨는 신고를 한 후 13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11시 50분쯤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신고시간부터 곽씨가 발견되기까지 13시간 동안 진행된 경찰의 수사과정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늑장대응, 허위보고 계속돼
이번 사건에서는 경찰의 부실부사, 늑장대응, 보고지연, 허위보고 등 큰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지적된 문제들이 또다시 반복된 것을 볼 수 있다.
피해자 곽씨는 사건 당일 경기청 112센터에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 못골놀이터 전 집인데요. 성폭행당하고 있어요”라고 긴박한 상황임을 알렸다. 즉 정확한 위치와 집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경기청 112신고센터는 수원 중부경찰서 관할 경찰에게 출동지령을 내릴 때 피해자가 ‘집안에 있다’는 사실을 누락시켰다. 수사가 사고 현장에서 1㎞ 가량 떨어진 못골놀이터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찰의 탐문도 수박 겉 핥기식이었다. 범죄가 의심되는 지역의 주민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귀대기’ 탐문을 한 것이다. ‘귀대기’는 문틈이나 벽에 귀를 대고 소리를 엿듣는 탐문기법이다. 늦은 시각 주민들의 수면방해를 우려해 현관문이나 창문에 귀를 댔다가 사람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경찰의 해명이다.
경찰의 안이한 상황판단도 사건을 키웠다. 관할 경찰서 형사과장은 오후 11시 41분께 사건발생 보고를 받았으나 단순 성폭행사건으로 판단, 사건 발생 10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 9시 10분에서야 현장을 둘러봤다.
국민들의 가장 큰 공분을 산 부분은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은폐하기 위해 경찰이 거짓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사고 후 강력팀 형사 35명을 바로 투입했다고 했지만 실제는 11명이 수사에 나섰다.
또 112신고센터는 곽씨와 1분 20초간 통화했다고 밝혔지만 감찰 조사 결과 실제 연결시간은 7분 36초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곽씨는 휴대전화로 신고를 하다 범인에게 발각되자 전화를 끊지 않고 켜둔 상태로 방바닥에 떨어뜨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가 전화기를 떨어뜨린 후 6분 넘게 피해자의 ‘비명소리’와 ‘비닐 테이프 찢기는 소리’ 등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조현오 경찰청장 사퇴
경찰은 이처럼 초동대응 부실 및 사건축소 은폐 의혹 등이 일자 여론 진화에 애쓰는 모습이다. 지난 9일 오전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조 경찰청장은 “무성의함과 거짓말로 국민에게 실망을 끼친 데 깊이 자책하면서 진심어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대국민사과 후 사퇴의사를 표명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에는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도 사표를 제출했다.
경찰은 지휘 감독 책임을 물어 수원중부경찰서장과 형사과장, 112센터를 총괄하는 경기청 생활안전과장 등 10명을 엄중 문책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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