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삽시다”
“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삽시다”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0.01.13
  • 호수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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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근로자 유원형씨

 

1981년 10월의 어느 날. 유원형(당시 31세)씨는 강원도 정선의 모 광업소에서 일하고 계신 큰 형님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재탄부(광부) 자리가 하나 났으니 얼른 오라는 것이었다. 광부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그래도 임금이 꽤 높아 당시 만해도 인기가 높은 일자리였다.

결혼을 하고도 아직 번듯한 직장을 갖지 못한 막내 동생을 걱정하던 큰 형님이 애를 쓴 것이 분명했다. 유 씨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길로 아내와 갓 돌을 넘긴 딸아이를 데리고 정든 고향 충북 제천을 떠나 정선으로 향했다.

그는 이제야 가장다운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3개월이 전부였다. 1982년 1월 23일 그는 갱내 광차사고로 인해 다신 걸을 수 없는 몸이 됐다.

작업 도중 광차에 치어

사고 당일 그에게 주어진 일은 동바리(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기둥)로 쓰일 나무를 골라 갱내로 내리는 것이었다.

너무 무거운 나무는 광부들이 좁은 갱내에서 운반하고 설치하기가 힘들기에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가며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재질의 참나무만을 골라냈다. 나무 골라내기에 정신을 쏟고 있던 그때, 소리를 지르는 동료들의 몸짓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광부들을 싣고 내려갔던 광차가 다시 동바리를 싣기 위해 올라오고 있었다.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광차는 그를 치고 연이어 양다리를 깔고 나갔다.

사고는 늘 예상 못한 곳에서 난다

사고가 난 곳은 지하 150m의 갱도였다. 탄광이 총 850m 깊이라는 것을 두고 본다면 다행히 그리 깊지 않은 곳이었다. 서둘러 동료들이 구급차를 불러와 인근의 동원보건원(현 사북 연세병원)으로 이송됐고 곧 수술실로 들어갔다.

6시간의 긴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떠보니 하얀 병실이었다. 적막한 병실을 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아내의 울음소리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픔을 따라 시선을 내려 보니 당연히 있어야할 그의 양다리가 없었다.

막막함이 눈앞을 가렸다. 그의 뒤에는 결혼한 지 2년도 안된 아내와 이제 갓 돌을 넘긴 딸아이가 있었다. 열심히 살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고의 위험에 대비를 안 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광산에서는 매몰이나 가스사고가 흔했기에 매일 아침 실시되는 안전교육을 꼭 들었음은 물론 채탄작업에서도 늘 주의를 기울였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광차사고가 난 것이다. 사고는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난다는 선배들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대상없는 원망과 원통함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게다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의료진과 주변의 말은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갔다.

“아내를 위해 열심히 살 것”

3개월여의 상처치료가 끝나고 인천의 산업재활원(현 인천중앙병원)으로 옮겨왔다. 병원을 옮겨오며 마음가짐도 새롭게 했다. 내일 죽던 모레 죽던 하루를 살더라도 밝고 즐겁게 살자고 다짐했다.

재활치료는 물론 병원에서 산재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귀금속디자인 등의 특수재활요법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비록 장애우가 됐지만 이런 몸이라도 익힐 수 있는 기술을 배워 가정을 지켜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재의 상처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수술부위에 계속 염증이 생기면서 근 30여년간 병원을 옮겨가며 10여번의 재수술을 받았다. 의지를 다잡기 무섭게 재발하는 염증과 고통에 심신이 지쳐갔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의 뒤에는 평생을 뒷바라지 해 온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재근로자를 버리는 부인이 흔한 세상임에도 아내는 묵묵히 병간호와 함께 직장 생활을 해가며 그를 대신해 가정을 꾸려나갔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모두 28년 동안 제 곁을 지켜준 아내 덕분입니다. 아내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너무 고마워서 말도 못하고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다고 그리고 당신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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