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행위에 대한 청구권 소멸돼지 않아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등 2개 기업에게 일제시대 강제징용에 따른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10여명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며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강제징용에 따른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본 재판소가 피해자들이 이번 소송에 앞서 제기한 동일한 소를 기각한 것은 한국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 하에 내린 판결”이라며 “이는 일제강점기 때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본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본 기업들이 인적·물적 구성을 그대로 승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법인과 현재의 법인 간에 동일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질서에 비춰봤을 때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 국가 권력이 관여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한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이병목(89)씨 등 6명은 1944년 히로시마 미쓰비시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노무자로 끌려간 뒤 열악한 환경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이씨 등은 이에 1995년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패소했다. 또한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2007년 이들에 대한 패소를 확정했다.
이씨 등은 또 일본 법원에 항소한 뒤 이듬해인 2000년 5월 한국 부산지법에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1억원과 미지급임금 100만원’에 대한 같은 소송을 냈으나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아울러 여운택(89)씨 등 5명은 1944년 신일본제철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리다 제철소가 공습으로 파괴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들도 1997년 오사카지방재판소과 오사카고등재판소에 잇따라 소를 냈으나 모두 졌고, 상고심 재판부도 2003년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여씨 등은 이후 2005년 2월 한국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냈으나 패소했고, 서울고법에서도 여씨 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본 정부, 기존 입장 고수
이번 판결은 외교적, 국제적으로 많은 파장을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당시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뒤집은 것은 물론, 강제동원은 합법이라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1965년 ‘한국 정부가 5억 달러의 차관을 받는 대신 개인들의 청구권은 포기한다’는 내용의 ‘청구권협정’을 맺었고,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미지급 임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보상이 완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25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징용 피해자의 보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상도 회견을 통해 “개인을 포함한 청구권은 1965년 협정으로 완전하게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했다. 즉 징용 피해자들이나 한국 정부의 보상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일제 식민지 지배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개인 권리를 존중한 부분 등은 나름 의미가 있다”면서도 “정부 입장과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이번 판결은 개인과 일본 기업 간 소송에 대한 것으로 정부가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최종 판결까지 지켜본 뒤 대응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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