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안전규정, 재난안전통신망 등 사고 예방책 필요성 제기
지난주 우리나라에는 볼라벤(BOLAVEN)과 덴빈(TEMBIN) 등 2개의 태풍이 잇따라 강타하면 이로 인한 피해로 얼룩졌다. 볼라벤에 의한 피해를 채 복구하기도 전에 덴빈이 상륙하면서 피해가 커진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15호 태풍 볼라벤은 지난달 28일 오후 4시께 북한 황해도 강령군에, 제14호 태풍 덴빈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45분께 전남 완도군에 상륙했다. 볼라벤과 덴빈이 42시간 45분의 시차를 두고 한반도에 상륙한 것이다.
이는 역대 우리나라에 연이어 상륙한 태풍들 가운데 가장 짧은 상륙 간격으로 그만큼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이번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어느 정도로 발생했을까. 아울러 이번 태풍 피해를 교훈삼아 앞으로 어떤 안전사고 예방 대책들이 시행돼야 할까. 본지는 볼라벤과 덴빈이 남긴 시사점을 정리해 봤다.
한반도 곳곳 태풍 상처 입어
27명 사망 실종· 이재민 341명 발생
이번 두 개의 태풍이 몰고온 강풍과 폭우로 인해 전국에서는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에서 따르면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는 25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22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태풍 ‘덴빈’으로는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119여명의 이재민이 나왔다. 즉 두 개의 태풍으로 인해 27명이 사망·실종되고 341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이다.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볼라벤이 기승을 부릴 때 전북 완주군 모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경비원 박모(48)씨가 강풍에 날린 컨테이너 박스에 깔려 숨졌다. 또 광주 서구에서는 인근 교회 외벽돌이 주택 지붕을 덮치면서 임모(89)씨가 벽돌더미와 무너진 지붕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덴빈의 영향권에 있을 때에 충남 천안에서는 계곡수로에서 통나무를 제거하던 서모(66)씨가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부산 부산진구에서는 강풍에 날린 패널에 맞아 이모(58)씨 등 2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인명피해 외에도 농경지와 차량 피해도 상당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태풍 ‘볼라벤’에 이어 ‘덴빈’이 몰아치면서 농경지 4만3,059㏊가 피해를 입었다. 특히 과수 피해가 막심했다. 피해 면적의 43%에 해당하는 1만8,675㏊의 과수원이 낙과 피해를 입은 것이다. 아울러 강풍으로 4,986ha 면적의 벼도 쓰러졌다. 이외에도 비닐하우스 2만208개동, 축사 1,239개동 등이 파손됐고, 닭·오리·돼지·소 등 가축도 30만 마리 넘게 죽었다.
한편 차량 피해는 특히 눈의 띄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연달아 상륙한 태풍으로 인한 차량피해는 1만5,000여건으로 지난 2003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4만1042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차량 피해가 났다.
손보협회의 한 관계자는 “침수로 인한 피해보다는 낙하물에 의한 피해가 많았다”라며 “손해·생명보험사들은 비상대책반을 꾸려 피해 고객들의 민원을 즉각 처리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풍이 할퀸 산업현장
산업단지도 태풍 피해를 빗겨가지 못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태풍 볼라벤으로 인한 전국 산업단지의 피해금액이 5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피해의 대부분은 강풍에 의해 건물이 파손되면서 발생했다. 이외에도 정전 등의 피해를 입은 업체는 4개 산업단지에서 280여개사에 달한다.
산단공의 한 관계자는 “현재 피해업체들의 신고가 계속 늘고 있어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도 지난달 29일부터 재해 중소기업 지원대책단을 마련해 피해 기업을 조사한 결과, 13개사의 피해상황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산업단지에 비하면 피해규모는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일부 사무실들이 벽이나 유리창 파손 등의 피해를 입었지만 피해 정도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현재 운영 중인 재해종합상황실을 계속 가동해 복구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 지자체 노력으로 피해 적어
태풍의 연이은 상륙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번에 상륙한 볼라벤과 덴빈 중 특히 볼라벤은 역대 우리나라를 찾은 태풍 가운데 다섯 번째로 강한 바람을 몰고 왔다. 서해상을 따라 북상하면서 곳곳에서 강풍 기록을 경신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만큼 강풍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됐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피해규모는 예년보다 적었다.
역대 강한 태풍으로 꼽히는 1987년 ‘셀마’, 1995년 ‘재니스’, 2003년 ‘매미’, 2002년 ‘루사’ 로 인해 적게는 50여명에서 많게는 2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등의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었다. 이에 비해 볼라벤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명피해가 난 것이다.
이렇듯 피해가 적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동 속도가 느리고 많은 비를 뿌렸던 다른 태풍과는 달리 강한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빠르게 이동하면서 비교적 강수량이 많지 않았던 것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제주산간에는 700㎜가 넘는 많은 비가 내리긴 했지만 시간당 20㎜가 넘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됐던 중부지역에는 10㎜가 채 되지 않는 적은 비가 내렸다. 즉 치수시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와 각 지자체의 노력도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힌다.
중대본은 태풍이 제주도를 강타하기 전에 비상근무를 최고단계인 3단계로 격상했다. 또 모든 지자체에서는 행정력을 동원해 태풍 대응에 만전을 기하기도 했다.
태풍이 계속해서 북상할 때 침수 우려가 있는 해안가와 저지대 지역 280곳의 주민 1,063명을 미리 대피시켰고, 타워크레인과 철탑, 전신주, 옥외광고물 등 강풍 피해가 우려되는 시설물은 물론이고 산사태와 급경사지, 옹벽, 축대붕괴 등의 재해취약지역도 사전점검을 마쳤던 것이다.
중대본의 한 관계자는 “초강력 태풍이 접근한다는 예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난방송과 재난문자 등 상황전파에 나섰다”라며 “특히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위험지역을 통제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한 것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말했다.

안전사고 예방 대책 수립 목소리 커져
타워크레인 안전성 향상시켜야
잇따른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예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은 분명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시정해야 할 점이 도드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타워크레인 붕괴 예방과 관련된 문제다. 실제로 태풍 등 강풍이 불 때마다 종종 들을 수 있는 소식이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다. 이번 태풍이 불어닥쳤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28일 전남 무안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7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붕괴된 것이다. 시민들의 이동이 잦은 출근시간에 발생한 사고였지만 다행히 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벽체지지방식을 써서 타워크레인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쇠밧줄로 지지하는 방식 대신에 건물벽체 지지고정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태풍이 불 때마다 와이어 지지고정 방식의 타워크레인이 전복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특히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땐 56대가 전복됐는데, 이들 중 90%가 와이어 지지고정 방식으로 타워크레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번에 붕괴된 타워크레인 역시 이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건설노조의 한 관계자는 “전국에 설치된 2,500여대의 타워크레인 가운데 약 70%는 와이어 지지고정 방식으로 설치돼 있어 강한 바람에 힘없이 붕괴될 위험이 크다”라며 “외국에서는 일부 특별한 현장에서만 엄격한 조건을 달아 와이어 지지고정을 허용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불안한 공법을 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타워크레인의 경우 전복사고 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국민과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관련법을 하루 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 필요성 증가
최근 들어 태풍 등 재난상황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유사시 안정적인 통신수단을 확보하는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의 필요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재난망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사업의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예산낭비와 특정 업체 독점 등의 문제로 표류하다가 대형 재난 발생 시 재추진되는 등 10년째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업이 연기되면서 경찰, 소방, 지방자치단체 등 재난재해 관리 기관들은 통합된 통신 수단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재해로 통신이 두절될 경우 체계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응급구조 상황 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난망 구축 필요성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사업을 재개했다. 행정안전부는 기술검증을 마치고 올 하반기 재난망 구축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청했다. 하지만 재난망이 구축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공급업체 간 경쟁이 심하고 기술방식에 이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광고판·교회 첨탑 내풍 안전기준 마련
실외 광고판이나 교회첨탑, 골프장 철탑 등이 낙하·붕괴되는 사고 역시 태풍이 닥칠 때마다 종종 발생한다. 이에 정부는 이들 공작물에 대한 내풍설계 기준을 정비하고 구조안전 확인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동안 건축물의 경우 바람, 지진 등을 고려한 설계를 의무화하고 허가 시 구조안전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광고판, 교회첨탑, 골프장 철탑 등 공작물은 축조신고 절차만 있을 뿐 별도의 구조안전 확인 절차가 없었다.
이에 국토해양부는 공작물 낙하, 붕괴 등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 또는 일정 높이 이상의 공작물은 건축물에 준하는 내풍설계를 의무화하고 관련 기술기준을 정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전문가 회의와 관계기관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중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내풍기준 강화로 공작물 낙하, 붕괴에 의한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그동안 무분별하게 세워진 도시 내 공작물, 광고판 등을 정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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