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주년 기념 산업안전 현안 간담회
위험성평가의 원활한 정착, 산재 감소 돌파구 국민의식 개혁과 안전문화 확산에 노·사·민·정 합심 필요
유해위험작업 도급시 하청사 기술력 철저히 검토해야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교육, 관리 등은 원청사 의무
부처간 중첩규제 타파해야 효과적 안전관리 진행
국민 안전의식 향상이 산업재해 근본 해결책
지난해 산업재해율이 사상 처음으로 0.5%대에 진입하는 등 점진적으로 산재가 줄어들고 안전문화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 우리나라의 안전체계는 부실한 면이 더 많다. 올해 들어 빈발하고 있는 누출, 화재·폭발 등 각종 화학사고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최근 사고 유형을 보면 상대적으로 안전관리가 우수하다고 알려진 대기업이나 주요 산단에서의 사고가 많아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이런 상황 속에 산재다발업종인 건설업 및 제조업종의 안전수준은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1970년대 경제성장기에 지어진 산단의 주요 설비 및 기기들이 노후화되면서 앞으로 중대재해가 급증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때문에 다양한 위협요인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 4주년을 맞이하여 노·사·민·정의 저명한 산업안전 전문가들을 초빙해 산업안전분야의 현안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다음은 금번 간담회에 참여한 인사들이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국장, 김영서 SK하이닉스 환경안전혁신그룹장, 이영순 매경안전환경연구원장, 정진우 고용노동부 산업안전정책과장(노·사·민·정 순).
Q.최근 주요 산업단지에서 누출, 폭발 등 화학사고가 다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영서 그룹장 : 역시 가장 큰 원인은 기기 및 설비의 노후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요 산업단지 내에 있는 설비 중 대다수는 1970~80년대 산업화시기에 설치됐습니다. 30년 이상 가동된 상태이기 때문에 설비의 노후화로 인한 각종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조기홍 국장 : 동의합니다. 설비가 노후화된 상태 그대로 공장을 가동하면 언제, 어떠한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고, 최악의 경우 엄청난 인명 피해와 환경오염을 동반하는 대형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비단 어느 한 산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단 대부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정진우 과장 : 말씀하신 설비 노후화도 주요 원인 중 하나지만, 최근 사고들을 보면 상당히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이들 사고에서는 크게 3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로 정상운전이 아닌 정비·보수작업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 기본적인 안전수칙 또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는 점, 고위험 작업을 도급받은 영세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즉 만연한 안전불감증에 더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정비·보수작업 등에 하청업체의 미숙련 근로자들이 투입되면서 인해 재해가 다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영순 원장 : 제가 세부적으로 추가한다면, 최근 발생한 사고의 경우 대체적으로 설비나 공정기술에 대한 고도의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물질 취급에 대한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가 많습니다.
배관을 잘못 연 경우, 관 부속품 등의 교체 시 확실한 체결을 확인하지 않고 주 밸브를 개방한 것, 적절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또 정 과장님께서 지적했다시피 비전문가에 의한 작업이 많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고위험 물질이나 고위험 설비를 다룰 때는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전문 기술자 또는 숙련 기술자가 적절한 절차를 밟아 신중하게 작업을 실시해야 합니다. 헌데 미숙련자가 포함된 업체에게 하청을 주어 이들로 하여금 정비나 보수를 실시하게 하다보니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서 그룹장 : 기업 입장에서 원가절감, 생산성 증대 등의 이유로 위험작업을 포함해 여러 작업을 하청 주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작업의 외주화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청업체라고 해도 기술력이 상당한 기업이 많으니까요.
다만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는 원청이 위험작업을 하청을 줄 때 해당 하청사의 기술능력이나 전문성 여부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영순 원장 : 맞는 말씀입니다. 위험물 등을 취급하는 설비를 하도급을 줄 때는 원청사가 하청인에게 미리 취급요령과 안전수칙 등에 관한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고 만약의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야 하나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청 작업자가 작업을 수행할 때에도 원청의 관련 기술자가 철저한 관리 감독을 실시해야 하나 그러하지 않은 경우 역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를 감안해 원청이 하도급 관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Q.그럼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을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조기홍 국장 : 우선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고, 전국 산단을 대상으로 철저한 안전점검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사업장의 총체적인 안전보건 부실을 예방하기 위해서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듯 최근 화학사고를 보면 대기업이 안전보건의 위험을 하청기업에 전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하청기업에 대한 원청사의 안전보건에 대한 법적인 책임 또한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서 그룹장 : 저 또한 모기업의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관리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협력업체의 안전의지가 미약한 상황에서 원청의 책임만 강화하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안전관리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원청이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원청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의식 강화 및 법적 제도 보완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순 원장 : 물론 원청 및 하청업체에 대한 법적 책임 강화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선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는 사업주가 스스로 산재예방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다음 사업주가 잘하면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사업장이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감독을 통해 강력하게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전보건공단·민간을 통해서는 기술적 도움이나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헌데 그동안 정부는 법규의 미비, 감독인력의 부족 등을 이유로 소규모 위험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다소 소홀히 한 경향이 있고, 유해위험물질사고에 대한 초동 대응 역시 부실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부분부터 개선이 필요합니다.
정진우 과장 : 이런 지적을 감안해 정부는 위험작업을 도급주는 경우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고,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대해 화학물질을 위험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 안전수칙 위반 사업장에 대한 행·사법조치와 관리감독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유해·위험작업시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풍토를 조성해 나가려 노력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대형사고 발생 위험이 큰 정비·보수작업은 사전예방 활동이 중요하므로 전담 감독관을 지정, 밀착관리를 할 계획입니다. 특히 화학사고에 의한 산업재해 없는 안전한 일터조성을 위해 현재 ‘화학사고 산재예방 종합대책’ 역시 마련 중에 있습니다.
이영순 원장 : 이처럼 정부가 노력 중에 있다면, 이제는 일선 사업장 역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흔히 사업장에서는 반응기나 다량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탱크와 같은 위험성이 큰 설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고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그러나 배관이나 관 부속품 등 일상적으로 조작을 하는 설비·기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례에서 보았듯 사고는 대체적으로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설비에서 발생합니다.
이와 함께 인력체계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전자회사나 소규모 화학 관련 사업장은 화학물질취급업무가 주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이들 회사 중 상당수가 화학물질업무를 관련 전문업체에 하청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하청업체도 어느 특정한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뿐 모든 물질 및 설비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자격증은 있어도 경험이 부족한 비전문가가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정상적인 업무는 수행할 수 있으나 조금만 비이상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안전한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업장에서 안전규칙의 습관화를 목적으로 안전관리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사업장 스스로 관련 전문가를 확보하고, 전문가 활용 및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유해 위험물 관련 공정을 하청할 때에는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또한 이런 현장의 노력에 더해 화학물질 관련 재난에 대한 초기 대응 시스템 구축 및 정부부처 간 조정능력을 향상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영세사업장이 실질적인 안전관리를 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합니다.

Q.올해부터 위험성평가가 본격 실시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제도가 산재감소의 기폭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 각계의 기대가 큽니다.
정진우 과장 : 먼저 제가 위험성평가를 도입한 배경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서 단순히 ‘산업안전보건법령을 준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과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시대적 흐름입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사업주부터 ‘가능한 한 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 수준을 최대한으로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유력한 방법의 하나가 ‘위험성평가제도’입니다.
이영순 원장 : 덧붙이자면 이 제도는 사업장에 잠재된 유해위험요인을 사업장 스스로 파악한 후, 이들 유해위험요인이 산재로 전이 될 가능성과 만약 산재가 될 경우 피해정도를 추정하여 위험성을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재예방대책을 수립해 실천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오랫동안 활용하던 제도로 여러 면에서 검증이 이루어졌고 현재 안전관리제도 중 가장 좋은 제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위험성평가제도가 본격적으로 작동되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유해ㆍ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위험성을 산출하는 과정 등이 현장 근로자에 의하여 제대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사항이 안전작업 습관화로 이어지도록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훈련이 실시되어야 하는데 혹시 형식에 치우치고 서류작업에 역점을 두는 제도로 흐르지 않을지 염려됩니다.
조기홍 국장 : 저도 원장님의 우려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유해·위험요인을 사업장 스스로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산재는 줄어들 것입니다. 다만 그 실천 동력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제도 정착의 관건입니다. 이런 점에서 위험성평가를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험성평가가 사업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에 더해 반드시 현장 근로자의 참여가 보장돼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험성평가는 근로자를 배제한 채 안전보건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 걱정입니다.
산업안전 전문가는 위험성평가의 주체가 아니라 사업장에서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컨설팅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공급자 중심의 안전보건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결국 이 제도는 법적인 의무만을 수행하기 위한 형식적인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합니다.
김영서 그룹장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PSM사업장 및 대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허나 1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아직 제도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때문에 제도 및 인력적인 측면에서의 뒷받침이 필수입니다. 모기업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부 및 관련 기관에서도 실질적인 지원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산업현장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제도가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우 과장 : 정부 역시 그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위험성평가가 모든 사업장에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약 180만개소)의 약 98%에 달하는 근로자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참여가 필수입니다. 문제는 실효성이 있는 지원책을 마련, 시행하는 것이지요.
이영순 원장 : 현재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 및 컨설팅 지원을 실시하는 한편 현장심사를 통한 인증제도를 도입해 인센티브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예방요율제를 활용해 산재보험료를 15% 할인해주는 등 유인책도 제공할 것이라 하니 기대가 됩니다.
여기에 더해 공단이 실질적인 위험성평가가 수행될 수 있도록 제대로 지도하고 고용부에선 잘하는 사업장엔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못한 곳엔 불이익을 확실하게 준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이 제도가 정착되어 산재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진우 과장 : 말씀하신대로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설명하면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운영지침(고시)’을 제정하고 해설지침서를 마련했으며, 사례집·모델·가상체험프로그램 등도 개발·보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담당자 교육, 컨설팅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해 지원하고 있고 위험성평가 우수 사업장으로 인정받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안전보건감독도 유예(면제)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Q.박근혜 정부가 시급히 추진해야할 산업안전관련 정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기홍 국장 : 사실 산재왕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산업안전보건 관련 정책이 여타 정책에 우선해 추진돼야 함이 마땅합니다. 허나 굳이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산업안전법의 예외 규정을 없애 모든 사업장이 산안법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영순 원장 : 우선 저는 산안법과 사업장의 조화를 주문하고자 합니다. 현장에서 안전은 생산이나 경영활동에 밀려 항상 후순위입니다. 때문에 안전관리에는 강제가 요구되고, 이로 인해 사업장을 규제하는 법률을 만들어 안전한 경제활동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목적은 올바르나 강제성이 짙다보니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산안법을 귀찮아하거나 꺼려합니다. 경영과 함께 안전관리가 일상의 업무로 여기도록 하는 합리적인 규제정책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최근 사고를 반영해 하도급 시 원청회사의 관리 감독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는 원·하청을 동등하게 책임을 지는 사업주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재해예방 측면에서 보면 분명 발주를 하는 원청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원청에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기에 원·하청이 함께 책임을 지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김영서 그룹장 : 같은 생각입니다. 원청의 안전사고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실효성이 있지만 원·하청이 상생발전할 수 있도록 관련법규의 재정비를 비롯해 제도적 지원 및 보완이 반드시 실시돼야만 합니다.
정진우 과장 : 정부 역시 원·하청이 함께 책임을 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만, 우선은 도급사업주가 도급으로 인한 재해예방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법·제도적 개선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유해위험설비 정비·보수 등의 작업을 도급할 경우 수급업체 근로자 보호를 위해 유해위험정보 제공조치 등을 의무화하도록 산안법을 개정해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했고, 원청사가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산안법령을 준수하도록 지도하고, 위반 확인 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도록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산안법의 개정을 통해 산재발생 위험장소에서 원청업체가 산재예방조치를 위반할 경우 원청에 대한 처벌 강화도 병행하여 추진하려고 합니다.
향후에는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안전보건 공생협력사업’을 통하여 공동으로 산재예방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적극 조성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영순 원장 : 그럼 몇 가지만 정부에 더 추가적으로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정부가 좋은 정책을 세우고도 원활히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부간 중첩규제입니다. 부처 간 안전관리 규제가 중복되지 않도록 역할 및 책무를 명확하게 하고, 재해 발생 시 초동대응이 잘 이루어지도록 업무 지휘 및 감독 조정기능을 강화했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안전문화 조성에 역점을 기울여 달라는 부탁도 전하고 싶군요. 산재예방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의 안전의식과 안전관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의지를 양성하는 방법은 우리 사회 전반에 안전문화가 조성되는 것뿐입니다. 안전문화는 어려서부터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안전 관련 규정을 준수하는 습관을 기를 때만이 정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등학교부터 안전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기홍 국장 : 저도 한 가지만 더 제언하겠습니다. 현재 산재통계에 적잖은 문제가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합니다. 대표적으로 지금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 산업법 적용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산재통계 대상에서는 빠져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산재통계가 정확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계획도 정확히 수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산업재해 통계 산출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Q.최근 산재 발생 법인(法人)과 사업주에 대한 법적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조기홍 국장 : 산재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산재 발생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다쳐도 얼마 되지 않는 벌금만 내면 되는데, 그 어느 사업주가 안전보건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8년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사고입니다. 당시 사고로 40명이나 사망했는데, 관련 책임자 중 단 한명도 실형을 받지 않았고 벌금도 2천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법부가 앞으로도 이런 솜방망이 처벌을 계속한다면 산재는 결코 줄지 않을 것입니다.
정진우 과장 : 정부도 산재처벌 강화를 원하는 여론을 어느 정도 수렴해 사망사고 발생 사업주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력한 처벌을 내릴 방침입니다. 대표적으로 산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사항뿐만 아니라 모든 위반사항에 대하여 최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재해조사와 별도로 안전보건기준 전반에 대한 감독(수시감독)을 실시할 계획에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처벌강화가 산재감소의 해답이라고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처벌강화는 산업안전보건기준의 준수도를 제고하는 데 있어 유효한 수단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안전수준 강화를 위해서는 처벌강화 외에 다양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예로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경우 형량이 높지 않으면서도 높은 산업안전보건수준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김영서 그룹장 : 사업주의 경각심 제고 차원에서 산재발생 법인 및 사업주의 법적 처벌 강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허나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는 결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대기업이야 어느 정도 처벌을 감내할 수 있겠지만, 영세한 중소사업장의 경우 미흡한 안전관리로 사고 가능성이 높은데 사고 발생시 큰 처벌을 내려서는 사업장 유지 자체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처벌 강화에 앞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런 지원을 통해 전반적인 사업장이 안전보건을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후, 의도적으로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장에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히 힘들다면 적절한 처벌과 지원을 병행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영순 원장 : 같은 생각입니다. 법적인 처벌기준만 강화한다고 하여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현행 법규도 처벌기준은 아주 강합니다. 산안법 위반 시 사업주에 대한 최고 처벌은 7년 이하의 징역입니다. 그러나 이 법이 적용되어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처벌은 안전에 대한 국민의 의식수준과 의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직 국민적 안전의식수준이 높지 않아 법규위반에 대한 처벌이 적절하게 실시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의식 제고를 위한 노력보다 처벌 강화에 힘을 쏟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기홍 국장 : 반대로 저는 법의 강화가 의식 수준 제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만 강화돼도 최소한 사업주가 안전보건에 큰 관심을 갖게 되고 이것이 결국 산재예방으로 이어집니다.
근로자의 사망은 결국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선진국들도 인지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때문에 호주, 캐나다, 영국의 경우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여 산재사망 기업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기업살인법의 제정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진우 과장 : 강력한 처벌을 위해 새로운 법의 제정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지금 산안법도 조금만 개선한다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산안법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산안법의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벌칙 강화 방법 외에 생각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으로서는 현장 감독관의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대신할 방법으로는 법위반에 대해 시정기회 없이 즉시 처벌하는 방법, 원칙적으로 예고 없이 감독을 하는 방법, 안전보건공단 등 전문기관의 적극적인 기술지원, 사업장에 대한 지도·단속을 강화하여 적발·처벌의 확률을 높이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우선 이들 사항을 철저히 추진하는 가운데 법적 기준이 없거나 미흡하여 처벌이 안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적 기준을 보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영순 원장 : 저 역시 비슷한 의견입니다. 일부 규제의 사각지대가 있고 위반에 대한 양형기준이 미흡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잘 검토하여 규제가 실효성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해위험물 관련 부분을 하청을 줄 때 원청회사가 하청업체와 공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식의 규정강화는 필요합니다. 허나 실효성이 없는 처벌강화는 오히려 법규준수 풍토를 저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법규의 미흡한 부분을 개정하고 조정하여 실효성 있는 규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 하는 사업장에게는 큰 인센티브를 주고 부진한 사업장에는 엄격한 법 집행을 실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향후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 분야가 지향해야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기홍 국장 : 산업현장에 산재예방을 위한 비용이 소모가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합니다. 산재를 예방할 때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증대된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 검증된 바 있습니다.
헌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기업에게 있어 안전보건은 중시 대상이 아닙니다. 일례로 대기업의 경우 매년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안전보건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국민과 주주들이 대기업의 안전보건 강화와 하청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면 기업은 변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재는 줄어들 것입니다.
김영서 그룹장 : 저도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기업이 제품의 품질만을 내세워 홀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현 사회는 기업에게 환경보호와 근로자 존중, 지역경제성장 등에 앞장설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협력업체는 물론 지역과 함께 상생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 기업은 안전보건을 중심에 두고 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은 선진국처럼 안전보건분야의 우수기술자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율안전보건관리체계의 정착을 위한 안전보건컨설팅 및 안전보건진단제도를 적극 도입해 실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이 안전보건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결과 위주의 행정처분 등을 보완·개선하는 등 법적제도를 명확히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이영순 원장 : 두 분께선 큰 틀에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당면과제에 대한 방향부터 제시하겠습니다. 우선 현 시점에서는 위험성평가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기가 실시하는 작업의 위험요인을 찾고, 이를 기준으로 안전대책을 수립하여 안전하게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생활화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교육 훈련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다방면에서 시작되고, 사업장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자발적으로 실시되는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의 조성을 위해 정부는 뒷받침할 정책을 수립·수행하고, 사업장에서는 경영진부터 위험성평가에 근거한 자율안전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정진우 과장 : 정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사망재해를 줄이는 데 노사정 모두가 총력을 기울여야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사망재해가 3~4배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망재해를 줄이지 않고서는 안전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선진국도 되기 힘든 상황입니다.
정부부터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안전기준도 지속적으로 선진화할 계획입니다. 기업체도 안전에 대한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꿔주길 바랍니다. 세부적으로 기업에서는 안전을 기업경영의 필수적인 요소로 삼고 생산과 일체화하여 운영해야 합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사업주가 안전기준의 비준수 비용이 준수 비용보다 크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방향으로 산재예방정책과 제도를 설계·운영해 나갈 방침입니다.
조기홍 국장 : 끝으로 오늘의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제가 몇 가지만 정부와 기업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 전문가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산업재해 문제를 피해자, 근로자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한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소모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한 사고는 계속될 것입니다. 산재예방을 사회·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기 위한 전 국민적인 의식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더불어 근로자를 중심에 둔 위험성평가의 원활한 조기정착과 원청과 하청의 상생안전관리를 도모하기 위해 대기업과 정부가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원청이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 이를 하청업체에 적극 전수하는 가운데 대기업과 정부가 함께 철저한 관리·감독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특히 대기업은 안전보건과 관련한 사회적 책임의 이수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우리 노·사·민·정은 이같은 과정이 원만히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합심하는 한편,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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