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 李 부부에게 보낸 편지

필자는 지난 80년대 참으로 간 큰 글을 써낸 엉뚱한 작가였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느낌이 든다.
언론은 통폐합되고 많은 사람들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했던 그 엄혹의 시대에 내가 생명을 걸고 쓴 특이한 책 한 권은 많은 국민들, 특히 ‘역적 전두환을 처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가두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에게는 불 앞에 던진 하나의 ‘화약상자’였기 때문이다(책표지 참조).
그래서 전국 서점들에서는 이 책을 빨리 보내 달라는 아우성으로 들끓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모 권력 기관으로부터 수배대상이 되었다.
내가 왜 하필이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아픈 역사의 이야기를 상기하게 되었을까? 요즘 연이어 모든 언론에 등장하는 전 씨 가족들의 부패 의혹과 거액의 추징금 문제 때문이지만, 그때 이 책을 그네들이 읽고 “그래 이것이 들끓는 민심이니 이렇게 하자”고 했었더라면 오늘의 이런 불미스럽고 두 번 세 번 죽는 셈의 창피한 수모는 당하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民을 卒로 보고 비웃었을지도 모르고 마치 프랑스 역사 속의 독재자 왕인 루이 16세와 부정과 비리와 사치의 극을 달렸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민심무시 같은 오만한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이 책 속에 쓴 글 중에 가장 핵심의 메시지는 부정으로 해먹은 돈을 전부 국가에 헌납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내려가서 황강에 낚싯대나 드리우고 조용히 노후의 안전한 여생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안하무인적인 행동으로 그 돈들은 ‘알토란같은 내 돈’이라 주장하고 나에게 29만원 밖에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버텨오다가 결국 역사의 신을 怒하게 했는지 새삼 세상이 시끄럽게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여기저기서는 “속이 후련하다”는 소리가 쉴 새 없으니 또 한 번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고, ‘하늘의 그물이 아무리 엉성해도 때가 되면 반드시 욕심많고 부정한자는 모조리 잡아 끌어 올린다’는 명언이 우리의 가슴을 때린다.
문제는 결자해지(結者解之)! 그렇다. 이 더운 여름철에 죄 없는 국민들을 더 이상 짜증나게 하지 말고 여러 검사들 휴가도 못 가게 괴롭히지 말고 하루속히 기자회견을 자청해 “나머지 추징금 1천 6백72억 원을 전부 다 토해 낼 터이니 국민들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달라. 그리고 지금이라도 고향인 시골로 내려가 낚시질이나 하면서 여생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
그것이 장군 출신다운 전 씨의 마지막 참회의 모습이고 그것이 장군의 아들 딸 다운 그 자녀들의 진정한 대국민 속죄의 모습이며 그것만이 맺은 자가 풀어내는 결자해지의 해법이 될 것이다. 며칠 전 그 집 둘째 아들이 “지금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매우 침통한 말을 던졌다.
벼랑에 선 그들을 지금 하늘이 보고 있고 국민들이 보고 있다. 제발이지 그들 가족들이 제2의 이완용 자손들 같이 숨어 살거나 또한 자유당 말기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엄청난 국민들의 원성을 받은 이기붕의 일가족 전부가 아들 이강석이 쏜 총탄에 맞아 피를 토하며 죽어간 그런 참상의 불행만은 없기를 바라며 그들의 여생에 생활안전을 기원한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나 쓴 글이다.
<작가,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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