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 作
제1부 누가 이 여인을 이렇게 만들었나? ② 성폭행이란 말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바와 같이 이성간의 강자가 약자에게 상대의 성을 유린하는 이 세상 범죄 중에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인 것이다. 한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버리는 인간사회에 있어서 안 될 정말이지 파렴치한 범죄이다.
누가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짐승 같은 짓으로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에게 이토록 슬프고 아픈 운명의 사슬을 채웠고 지극히 평화스럽던 한 가정을 철저하게 파괴시켜 파멸의 길로 몰아넣고 말았단 말인가?
누가 이 여인에게 이리도 무서운 저주의 돌을 던졌는가? 누가 이 가정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10년이 넘도록 소 외양간 같은 움막에 비참하게 갇혀 발광하는 모습으로 살아간 운명의 여인이 있었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는 엄연한 사실이고 매우 슬픈 일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혀를 차게 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참담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 여인의 처절한 삶과 이 집안이 겪어야 했던 참으로 기구한 운명. 이는 진정 신이 내린 저주였을까?
불행의 여신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착하고 착한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가. 마치 슬픈 전설 같은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아득한 세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륭산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줄기 하나를 생명의 젖줄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농촌 마을. 이 마을도 다른 농촌과 별다른 모습이 없는 논과 밭과 야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동네이며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 마을 한편에 자리 잡은 송산댁. 그 집 앞 큼직한 단감나무 가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까욱~ 까욱~ 하면서 구슬픈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울어재끼고 있었다. 옛부터 까치가 아침에 와서 울면 기쁜 소식이 있거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길조로 여겼으나 까마귀가 울면 이것은 분명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불긴한 일이 닥친다는 것을 예고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흉조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 부근에 까마귀가 날아와 울면 돌멩이를 던져 멀리 쫓아버린다.
열다섯 마지기의 논농사와 약간의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이 집의 안주인 송산댁은 화성군 송산면에서 시집을 왔다고 택호가 송산댁이 된 것이다. 송산댁은 아침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울고 있는게 몹시도 마음에 거슬렸다. 집 대문간 배추밭에서 아이들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단감나무에 앉아 울고 있는 까마귀를 훠~이 하며 쫓아버렸다.
“웬 놈의 까마귀가 재수 없게 아침부터 날아와 울어대고 있누. 퉤퉤”
그녀는 침을 뱉어가며 까마귀를 쫓아버리고 하얀 타월을 뒤집어쓰고 들로 나갔다. 송산 댁 외동딸 숙희가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그 해 4월의 일이었다.
유난히 붉은 진달래꽃들이 마치 어느 화가가 화폭에다 진한 분홍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온 산천에 그렇게 불꽃처럼 피어나고 노란 병아리 깃털 같은 개나리 꽃 들이 경쟁이나 하듯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났으며 한 맺힌 전설을 안고 있는 뻐꾹새가 왼 종일 뻐꾹뻐꾹 피울음을 토해내고 있던 기나긴 그 봄날 따스한 햇살이 서산마루 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시내 서점에 담임선생님 심부름을 갔다가 배가 고파 학교 앞 가게에서 떡볶이와 오뎅국을 사먹고 평소보다 한 시간 반가량 늦게 귀가 길에 오른 숙희가 마을에서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공동묘지 앞 오솔길 입구에서 두 명의 치한을 만난 것은 아마도 그 치한들에게는 사전에 벼르고 기회를 노린 계획된 일 같기도 하다.
숙희가 다른 학생보다 뛰어난 미모에 성숙한 몸매를 가졌기에 평소에 치한들이 숙희를 점찍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날, 열여섯 살 천진한 소녀 숙희의 몸이 찢겨졌다는 사실은 이 마을 생긴 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행이란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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