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소설, 절망의 강
실화소설, 절망의 강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3.08.07
  • 호수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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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 作
제1부 누가 이 여인을 이렇게 만들었나? ④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때서야 읍내 5일장에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던 동네 여자들이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흙이 묻어 엉망인 채 운동화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송산댁 딸 숙희를 발견한 것은 해가 서산마루에 거의 다 넘어갈 무렵의 일몰 직전이었다.

“숙희 쟤 틀림없이 무슨 일을 당했나 봐. 얼굴도 예쁘장하고 공부도 잘 한다고 소문이 자자 하두만 결국 어떤 놈팽이들한테 당했나 봐.”

마을 아낙들의 쑥덕거림 소리를 울타리 너머 상추 밭에서 언뜻 엿듣게 된 송산댁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과 놀라움에 떨면서 용수철처럼 밭에서 뛰어나왔다. 저만치 실성한 모습으로 집 쪽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딸을 불러 세웠다.

“숙희야! 이것아! 이게 무슨 꼴이야? 응! 대체 누가 이랬어! 누가,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냐구! 어서 말해봐 이것아 어서!!”

엄마의 몸부림치는 절규에도 숙희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냥 눈물만 글썽글썽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저만치서 안타까운 숙희 모녀의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던 마을 아낙들은 모두 손을 꼭 쥐고 혀를 끌끌 차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각자 집으로 걸아가고 있었다.

이날따라 기나긴 봄날 서산마루에 걸린 붉은 태양은 황금빛 누런 햇살로 절망에 가득 찬 모녀의 눈물 젖은 여린 눈을 슬프게 반사시키고 있었으며 송산댁 대문간 담장 위에는 검은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이 날의 참상을 증언이나 하듯 야옹 거리며 울어대고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장독대 옆에 빨간 봉숭아꽃을 심어 여름마다 꽃잎을 따서 곱게 손톱에 물들이던 소녀. 김소월의 시 산유화나 노천명의 사슴을 좋아했던 꿈 많던 문학소녀 숙희에게 이런 시련이 내릴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오색 무지개의 찬란한 꿈을 지닌 사춘기 소녀 숙희, 아직 남자 친구 하나 사귀어 보지 못한 순수한 여중생, 그녀는 그날 밤 힐끗힐끗 엄마를 쳐다보다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다시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저녁밥도 굶은 채 온몸에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잠이 든 딸의 옆에서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애처로운 딸의 이마에 배인 진땀을 닦아주고 있던 송산댁은 문득 숙희를 임신할 때 꿈꾸었던 그 불길했던 태몽이 생각났다.

부엌 위에 지붕 처마 밑에 동아리를 틀고 있던 하얀 백사 한 마리가 송산댁이 이고 오던 물동이에 떨어져 내리면서 꼬리에 빨간 피를 뚝뚝 흘리며 죽는 꿈을 꾼 그 다음날 송산댁은 심한 입덧을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 후에 숙희가 태어나자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시아버지를 비롯하여 온 식구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송산댁은 그 소름 끼치던 태몽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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