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소설, 절망의 강
실화소설, 절망의 강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3.08.21
  • 호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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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
제1부 누가 이 여인을 이렇게 만들었나? ⑥

얼마나 답답하고 초조한 시간이 지났는지, 이윽고 새벽닭이 울고 동쪽 하늘이 훤해오자 남편 일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어나 냉수 한 사발을 마시고는 쇠죽을 끓이기 위해 아래채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습관처럼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송산댁은 쿵쿵거리는 가슴을 두드리며 어쩔 수 없이 쇠죽을 끓이고 있는 남편 곁으로 다가 앉았다.

“여보, 내 말 듣고 너무 놀라지 말아요”하며 죄지은 사람 마냥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어제 숙희가 학교 갔다 돌아오다가 당한 참변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없이 안타깝고 애절한 아내의 목멘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중은 한동안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아내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그만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왜 어젯밤에 진즉 그 말을 해 주지 않았느냐며 쥐고 있는 부지깽이를 그만 쇠죽 솥 뚜껑에다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의 눈에는 아내를 원망하는 눈빛이 마치 이글거리는 아궁이의 장작불처럼 분노의 불길로 변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당기고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내에게 당장 술을 가져오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막걸리 한 사발을 숨도 쉬지 않고 들이마신 일중은 아직도 깊은 잠 속에 빠져있는 딸아이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딸아이를 데리고 당장 경찰서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숙희는 혼비백산이 되어 있었고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아버지를 어제 산에서 자신을 갈기갈기 짓밟은 치한들로 보였는지 그만 “으아악!!”하면서 찢어지는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치를 덜덜 떨고 있었다. 입고 자던 잠옷은 밤새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왼통 비 맞은 사람 몰골이 되어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힌 숙희 아버지는 그만 벽에 기댄 채 망연자실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이 뜨거운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줄담배를 태워 물던 일중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방문을 발길로 차고 나와 농기구 창고에 있던 자전거를 꺼내 다리를 비틀 거리며 올라타고 읍내로 향해 폐달을 밟고 있었다. 부녀간의 이런 처절한 모습을 마루에서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던 송산댁은 더 이상 견디어 내기 어려운 분노의 오열을 삼키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는 딸을 흔들어 깨웠다.

“얘야! 어서 일어나라, 일어나 밥 좀 먹고 어서 병원에 가자.”

그러나 딸아이는 엄마의 애절함도 못 알아듣고 갑자기 놀란 짐승의 눈빛으로 제 엄마를 노려보면서 “이 개 같은 놈들!” 하면서 땀에 흠뻑 젖은 잠옷을 벗어 송산댁의 얼굴에다 확 집어 던진다. 그러면서 묘한 웃음을 살짝 드러내었다. 아무리 모녀지간이라도 이성을 잃은 딸의 독기 어린 눈빛과 새파란 웃음을 보니 소름이 오싹 일고 무섭고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가정에 내린 시련을 하느님도 아셨는지 4월의 하늘에서 가는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찰서로 달려간 숙희 아버지는 초등학교 후배 한 명이 근무하고 있는 수사과로 들어갔다. 평생 이런 곳에는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순진하고 선량한 농부 김일중이 경찰서 구내 다방에서 고향 후배 정 형사를 만나 딸아이의 성폭행 피해를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분하고 원통했으면 그의 손에 들린 커피잔이 흔들려 절반이나 흘러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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