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모의 세상보기(13)
이른 아침, 저승사자 휘파람 소리 같은 핸드폰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어젯밤의 숙취가 찬물 한 모금과 함께 빈속에 퍼진다. 명절에 시댁에서 한껏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의 하소연을 들어주다 결국 크게 한판 싸운 게 발단이다. 답답한 속을 달래려 한잔 들이킨다는 게 속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이다. 아직 곤히 자는 아내와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씻고 출근길을 나선다. 요즘은 아내가 초저녁에 샤워하고 진한 향수만 뿌려도 불안하다.
쓰린 속을 움켜쥐고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한 시간을 버텨서야 회사에 도착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또 하루를 보낸다. 후배가 잘못 처리한 일 뒤치다꺼리며 상사의 지시를 마무리 하느라 하루가 저물고,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을 수북이 쌓아둔 채 회식자리로 끌려간다. 지친 몸으로 억지 웃음흘리다 결국 오늘도 11시가 다 되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집안일 돌보느라 지친 아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다소의 차이야 있겠지만 40~50대 직장인 남성들 대부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일하는 즐거움을 느낀 게 언제인지 아내를 바라만 봐도 침대 생각만 나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퇴근 후 친구와 한잔 기울이는 것 조차 전만큼 즐겁지 않다. 그래서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돌입하면서 기업 환경은 날이 갈수록 급변하고 경쟁은 심화된다. 최소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앞서가고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업무에 매진해야 한다. 그뿐인가, 직장 내 인간관계와 이해관계를 위해 업무 외 시간도 짬짬이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가정생활은 늘 뒷전인데, 집안일에 힘든 아내는 이런 남편을 이해할 여유가 없다.
물가는 점점 오르는데 재테크 좀 해보겠다고 펀드에 넣어둔 돈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월급은 제자리다.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풀어보려 또 술을 마셔보지만 몸과 마음 어느 하나 나아지는 게 없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렇게 쫓기듯 살 수밖에 없는 남성들은 행복도가 낮다는 대한민국 내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인생의 황금기를 이토록 절망적으로 보낸다면 곧 이어 맞이할 정년 이후의 인생도 헤어날 길 없이 망가질 것 같아 불안하다. 이런 대한민국 남자들이 살 맛나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가지!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하고 항상 생각을 긍정적으로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직장 없는 실직자, 아니면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라.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작가,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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