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소설, 절망의 강
실화소설, 절망의 강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3.09.11
  • 호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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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 作
제1부 누가 이 여인을 이렇게 만들었나? ⑨

입원한 지 일 년이 지나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해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도로 집으로 데려왔을 무렵, 그 또래의 딸아이를 키우는 동네 사람들조차 이 가족들의 아픔을 아랑곳없다는 듯 빈정대고 손가락질했다.

“그년 미쳐도 더럽게 미쳤어. 시상에 툭하면 옷을 홀랑 벗어 버린 대여” 하면서 냉대와 멸시는 말할 것도 없었고, 심지어 애를 어떻게 저렇게 키웠느냐며 입을 비쭉거리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다정한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다. 말하자면 이 집 식구들은 철저한 왕따가 되어 그것이 더욱 서러웠고 분했다. 심지어 숙희와 동급생들까지 “더러운 기집애, 우리 여자 망신 다 시키고 다녀. 남학생들이 뭐라는지 알아?” 하면서 온갖 멸시와 냉혹한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비정한 세상의 인심인 것을… 하며 딸아이가 외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집 뒷마당 한편에 외양간 같은 움막, 말하자면 아무도 모르게 딸을 가두어두기 위해 숙희 아버지 일중은 사설 감옥 하나를 지어 그 속에다 어린 딸을 집어넣을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지 않고선 툭하면 뛰어 나가버리는 딸을 보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세월이 얼마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사건 당일 숙희를 시내 서점에 책 심부름 보냈던 담임 선생 배지숙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양심의 가책과 도의적 책임감에 고민을 해왔던지 이 모두가 자신의 임신된 몸, 그 안위만을 생각했던 자기의 책임이라며 교육자 양심으로 더 이상 교단에 머무를 수 없다며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다. 현실에 보기 드문 참 스승의 양심이었다.

배지숙은 그날 자기가 심부름만 보내지 않았어도 꽃같이 예쁘고 착한 숙희가 저런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죄스러운 고민과 심한 우울증까지 겹쳐 출산핑계로 휴가를 내었고 그러다가 그만 유산이라는 아픈 상처까지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숙희 부모는 학교에 찾아와 항의나 원망 한번 하지 않아 그것이 더 큰 고통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죄로 하여 어린 제자가 저런 참담한 불행의 늪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래, 다 내 잘못이야.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유산이란 무서운 형벌을 내리신 거야’ 하며 속으로 많이도 울었다. 배지숙은 숙희의 사건 당시 결혼한 지 일 년 된 예쁘고 마음씨 착한 새색시 여 선생님이었다.

배선생이 이 시골 여중에 처음 부임하던 날 학생들은 물론 모든 선생님들도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고향인 충청도에서 교육대학을 나와 이곳으로 첫 발령을 받은 그녀는 사건이 나던 날에는 임신 3개월이었다.

그날 따라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시내의 서점까지 가기가 어려워 별다른 생각 없이 평소에 심부름을 잘하는 숙희에게 새로 번역되어 나온 「랭스턴 휴즈」의 시집을 한 권 사다 달라고 부탁한 게 그만 결과적으로 이런 엄청난 불행을 초래한 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당시로써는 그 시각에 시내버스를 타고 서점까지 갔다 와도 별로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숙희 집 가는 중간 지점에 그런 으슥한 산길이 있다는 것도 사건이 난 후에야 숙희 친구들로부터 듣고 알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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