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5월 충북 청원의 한 시골, 김충현씨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정의 5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명석한 머리로 어려서부터 촉망받던 그는 마을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서울로 유학을 가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으며 1978년 국내유명 주방가구 업체에 입사했다. 이후 지금의 아내를 맞이해 1남 1녀를 둔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그렇게 그는 평온하면서도 평범한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단꿈은 한순간에 깨지고 말았다. 업무차 들린 공사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나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된 것.
휠체어를 타고 다닌 지 올해로 꼭 19년째, 힘겹지만 세상과의 싸움에서 꿋꿋이 승리를 이어가고 있는 김충현씨(59)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휠체어를 타고 다닌 지 올해로 꼭 19년째, 힘겹지만 세상과의 싸움에서 꿋꿋이 승리를 이어가고 있는 김충현씨(59)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설마’가 불러온 돌이킬 수 없는 사고

1991년 4월, 주방가구회사의 관리 차장으로 일하던 그는 출장차 충북 청주를 방문했다. 그날은 모 아파트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공기(工期)에 대해 협의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파트 신축현장이었던 그곳은 건축자재와 건설장비가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던데다 철근골조를 세우기 위해 바닥 여기저기가 5m정도의 깊이로 파헤쳐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공사장 주변에 안전난간대가 설치 돼 있었지만 얼핏 봐도 그 설치상태는 매우 허술해 보였다.
불안전한 현장 모습에 약간의 우려가 생기긴 했지만 그는 ‘별일 있겠어’하는 마음에 곧 잊고 관계자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업무를 끝마치자 어느새 현장 곳곳엔 어둠이 깊게 내려 앉았다. 서둘러 집에 돌아갈 생각에 그는 일행의 맨 앞에서 걸음을 재촉했다. 현장 입구의 어두운 바닥을 보며 왠지 불안한 마음이 엄습하던 찰나 안전난간대가 그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그는 5m 지하 공사장 바닥으로 안전난간대 자재와 함께 추락했다.
휠체어 없인 못사는 1급 지체장애인
추락사고의 충격으로 경추 6·7번, 흉추신경 6·7번이 크게 다쳤다. 의사는 그에게 평생을 하반신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어렵게 말했다.
그는 깊은 절망감에 뜨거운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설마 했던 그 한순간에 40년간 열심히 노력하며 쌓아온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아내가 조심스레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잡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자고 했다.
머리에는 3㎏의 추를 달고 4개월을 침대에 누운 상태로 지냈다. 돌아누울 수 없는 답답함 보다 더 힘든 일은 대소변과 욕창 문제였다. 척수 손상으로 인해 대소변 기능이 마비되어 넬라톤(고무호수)으로 대소변을 받아냈다.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다. 마음은 당장에라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의 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영원히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하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된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살아야 한다
집안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1994년 6월, 그는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등으로 장애를 입은 동료 장애인 6명과 함께 붓사랑회라는 서예모임을 만들었다. 5평 남짓한 아파트상가공간에서 전문서예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서예와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예를 배웠다. 산재의 후유증이 온몸을 휘감을 때 마다 붓을 잡고 글을 썼다. 고통을 견뎌내며 연습한 그들의 실력은 나날이 늘었고, 1995년 8월 제5회 한국장애인미술대전 서예부분에서 회원 모두가 입선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록 사고로 한순간에 장애를 입고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방황을 했지만, 그는 서예라는 도전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직을 맡아 장애인의 문화생활 증진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전국 산업현장 곳곳에서 근로자들을 위한 산재 예방교육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그의 남은 소망은 앞으로 자신과 같은 산재근로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자취를 감추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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