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헌재 판정에 일제히 유감 발표
‘자기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다 사고를 당했을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았다. 지난 2일 헌법재판소는 서울행정법원이 양모씨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 1항 1호 다목에 대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4명, 헌법불합치 5명으로 합헌 결정했다. 재판관 사이에 헌법불합치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더 많았지만,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으로 결론이 났다.
합헌 의견을 보인 김창종·안창호·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사업주의 무과실손해배상책임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라며 “사업주의 관리가 미치지 않는 통상의 출퇴근 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출장의 경우는 구별해 보상하고 있는 점,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외국의 경우 근로자가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해당 법 조항이 불합리하다거나 자의적으로 차별취급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헌법불합치 즉 위헌 의견을 보인 박한철·이정미·김이수·이진성·강일원 재판관은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출장과 다를 것이 없는 통상의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산재보험의 생활보장적 성격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출퇴근 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정신적·신체적·경제적 불이익은 매우 크다”면서 “해당 법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근로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줘 자의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들은 “해당 법조항을 단순위헌으로 선고할 경우 최소한 법적 근거마저 상실되는 공백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모 방송국 기술국장으로 재직하던 양씨는 2011년 7월 집중호우 때 사업주의 비상소집 지시를 받고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해 출근하던 중 우면산 산사태로 인한 토사에 매몰되는 사고를 당했고, 이로 인해 사지마비와 경부척수 압박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이에 양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으나 불승인 처분을 받자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는 한편 산재보험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산재보험법 개정은 사회적 요구
현행 산재보험법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사고로 보고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통상 출퇴근 사고가 산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위헌성이 있다는 의견이 대거 나오자 이제는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4일 성명서를 통해 산재보험법 합헌 판정에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위헌소지 의견이 과반을 넘은 것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성명서에서 한국노총은 위헌소지 의견이 과반을 초과했다는 것은 근로자의 출퇴근재해 보호를 위해 국회와 고용노동부가 산재보험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교통수단의 다양화에 따라 기존 사업주가 제공한 출퇴근용 차량에 대한 보호 역시 출퇴근 전반에 대한 보호로 확대되어야 한다”면서 “공무원 등 특수직역 종사자의 경우 출퇴근재해를 공무상재해로 인정하고 있는데 근로자의 출퇴근상 재해를 공무상재해와 달리 판단하는 것은 분명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이와 같은 의견을 보였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다수의 재판관들이 위헌성을 지적했고 출퇴근 재해의 보상범위를 확대하는 입법개선을 촉구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06년에 출퇴근 재해 재정추계를 검토했으나 재정건전성 악화우려가 제기되면서 법제화하지 않았다. 당시 연구에 따르면 통근재해가 산재로 인정될 경우 총 1조2414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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