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 作
제2부 한 여인의 인생을 참담히 짓밟은 짐승들(16) 죽자! 그래. 저년을 죽이고 내가 죽는 일 그 길만이 이 안타까운 문제의 해결일 듯싶었다. 하늘같은 남편도 죽었는데 하잘것없는 우리가 못 죽을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두 번째의 모녀 동반 자살기도였다.
송산 댁이 쥐약을 사이다에 타 가지고 움막으로 숨죽여 걸어간 시각은 그날 밤 10시경. 딸의 배가 남산처럼 불러 오르던 임신 7개월 되던 날, 그날도 비가 창대같이 내려 붓던 밤이었다.
모두 죽자.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니 새끼들도 함께 죽자. 이번 자살이 성공을 하면 두 사람만의 주검이 아니다. 네 명의 목숨이 끊어지는 집단 자살의 대 참극이다. 먼저 간 네 아버지까지 다섯 명이 죽는 거다. 그래 죽자! 송산 댁의 가슴은 떨고 있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년아! 억울하게 몸 빼앗겨 정신 나간 것도 원통한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 와서는 또 어느 천벌 받을 놈의 씨를 받아 임신까지 하다니…… 어찌 우리 집안에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윽윽”
송산 댁의 피맺힌 절규는 끊이지 않았다. 오장육부를 잘라내는 아픔이었다. 어디다 견줄 수 없는 절망이었으며 이 세상의 어떤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통곡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입술은 동지섣달 찬바람에 떨고 있는 문풍지 같았고 한 손에 들고 있는 약 병은 마치 내림굿하는 무당의 손에 들린 대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이 그녀의 명치끝을 바늘로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굳게 잠긴 움막의 자물쇠를 열고 담요 한 장을 덮고 누워있는 딸의 움막 방으로 들어갔다. 딸은 그때까지도 잠을 자지 않고 누워서 천정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말은 분명 ‘개 같은 놈들’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 갑자기 후레쉬 불빛을 받은 숙희의 눈에서는 갑자기 포획된 성난 들짐승이 밤에 내뿜는 새파란 광채가 나는 눈빛과 같은 그런 분노의 불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송산 댁은 딸의 눈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쫙 일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갑자기 손전등 불빛을 받은 숙희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마치 사나운 개가 낯선 사람이나 도둑에게 달려들 듯이 엄마의 목을 껴안고 제 엄마의 귀를 물어뜯는 것이다.
“이놈아, 이 개 같은 놈아” 하면서 마구 발악을 하며 달려들었다. 눈빛은 여전히 파란 불꽃이 일었고 증오의 욕설은 칼날 같았다. 그 바람에 혼비백산이 된 송산 댁이 들고 있던 약병과 손전등은 방바닥에 뒹굴었다. 약병은 깨어져 박살이 나버렸고 코를 찌르는 독약은 딸의 담요 위에 지도를 그리면서 쏟아져 버렸다.
또 다시 모녀의 동반 자살은 실패였다. 도저히 딸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딸의 괴력에 송산 댁은 심한 구타만 당하고 귀를 물어뜯긴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도망치듯 돌아 나와야 했고 이튿날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아무에게도 이런 사정을 말할 수 없었던 송산댁은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뒷산 마루에 남편의 뼛가루가 뿌려져 있는 시아버지 산소로 올라갔다. 너무 서러웠다. 북받치는 설움에 견딜 수가 없어 산소 앞에 듬성듬성 올라온 풀을 뽑고는 소주병을 꺼내 한잔 부어 놓고 절을 하고 연거푸 술을 따라 마셨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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