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소설, 절망의 강
실화소설, 절망의 강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3.11.20
  • 호수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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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 作

제2부 한 여인의 인생을 참담히 짓밟은 짐승들 (18)

숙희 어머님!
나중에 만나 뵈올 때 자세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제 마음이 이리도 아프고 괴로운데 어머님께서야 오죽 하시겠습니까? 제 친구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어서 물어 보았는데 인간의 각종 질병 가운데 가장 어려운 정신과 치료는 인류가 풀지 못하고 있는 최고의 현대 의학 숙제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안정된 생활이나 요양을 잘 하면 간혹 제 정신이 돌아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 보십시다. 그래서 저는 친정어머니의 도움과 남편에게 받은 이혼 위자료 등을 가지고 숙희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산언저리에 조그마한 암자 한 개를 짓기로 마음먹고 오늘 부동산에 가서 부지 잔금을 다 치르고 왔습니다.

오는 길에 숙희네 들리려다가 숙희의 모습을 보게 되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 아직은 차마 발걸음을 그 곳으로 향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군청에서 건축 허가가 나오면 곧바로 착공을 하게 되고 완공이 되려면 6개월 정도 걸린다니 제가 자주 내려갈 것입니다.

그 암자가 완공되면 전 그 곳에 내려가 부처님을 모시고 숙희가 제발 회복되게 해 달라고 불공드리며 살 것입니다. 물론 숙희와 함께 살 것 이며 숙희가 낳을 애기도 제가 맡아 키울 생각 이구요. 애기가 태어나면 유전자 감식을 해서라도 반드시 성폭행범을 잡아낼 계획입니다. 그리고 유난히 뻐꾸기와 산비둘기가 많다는 그곳으로 가서 아침마다 산새 소리를 들으며 글이나 쓰고 살아갈 것입니다.

남은 재산으로 숙희가 출산할 아이 공부시켜서 이다음에 유능한 검사 한 명 만들어 엄마 가슴에 사무치는 원한을 풀어줄 성폭력 단속에 일익을 담당하게 부탁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숙희 같은 희생자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저의 안전을 생각지 않은 불찰과 실수, 저의 잘못을 만 분의 일이라도 사하는 길이 되겠다 싶어 과감하게 결정한 일이오니 그렇게 아시고 제 뜻에 따라 주십시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건축 허가가 나오는 대로 공사 책임자 데리고 내려가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서울 마포에서 배지숙 올림-

참으로 반가운 편지였다. 송산댁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앞치마로 몇 번이나 흐르는 눈물을 닦았으며 세상에 이런 양심과 인정을 지닌 분도 계시구나 싶어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고마움에 목이 메었고 기쁨에 가슴이 울렸던 것이다. 딸의 불행, 남편의 죽음으로 자신의 양쪽 팔이 다 떨어져 나가버린 절망감을 느끼고 있던 송산댁에게는 이 이상 더 기쁜 소식은 없었다.

‘그래. 하늘이 도와주시고 조상님들이 보살펴 주시는 거야. 엊그제 산소 앞에 쓰러져 잠들었을 때 나타났던 그 백발 노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고마운 분이… 이런 천사 같은 분이…’

숙희가 신학기를 맞아 담임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다면서 우리 선생님은 탤런트 채시라 만큼 예쁜 선생님이라고 기뻐하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 그 선생님이구나, 얼굴도 예쁘다더니 마음도 비단결이구나.’ 송산댁은 실로 오랜만에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웃고 있었다. 천지가 캄캄했던 그녀의 앞날에 한줄기 밝은 빛이 보였으며 온몸에 전율의 파도가 희망의 소리를 내며 밀려왔다.

이 편지를 받은 다음날, 송산댁 휴대폰에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숙희가 성폭행을 당한 이튿날 집에까지 달려왔던 남편 후배, 정 형사의 전화였다. 그 후 자신은 승진을 하여 도경으로 전근을 왔는데 어젯밤에 검거된 강간범 두 놈을 잡아 여죄 추궁을 해가다가 그때 숙희의 성폭행 사실을 자백 받아냈다는 정말이지 꿈같은 전화였다. 이런 걸 두고 조상의 도움이며 사필귀정이라 했을까….

이때였다 송산댁 안방의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를 울린다. 전화기 속의 남자 음성이다. “저 경찰서 정 형사입니다. 숙희 어머니 시죠?” 그렇게 시작된 정형사의 말속에는 엊그제 그 마을 주변에서 성폭행 미수범 한 놈을 잡았는데 이놈이 혹시 숙희를 그렇게 만든 놈 아닌가 싶어 지금 숙희가 정신이 좀 어떤지?

혹 이놈과 대질을 하면 잃어버린 기억이겠지만 그래도 간혹 정신이 들어 옛날의 그 참상을 기억해 낼지도 모르니 내가 이놈을 다리고 숙희네로 갈 터이니 어디 가시지 말고 좀 기다려 달라는 요지의 전화였다.

송산댁 의 가슴은 또 뛰기 시작한다. 지금에 와서 우리아이가 그 범인, 말하자면 딸아이의 뱃속에 든 죄악의 씨를 뿌린 놈을 어떻게 기억할것인가 그리고 설사 그자가 범인이 맞다 해도 그놈이 한사코 오리발 내밀면 무슨 방법으로 범인을 잡아 낼 것인가? 싶은 회의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산댁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정형사에게 공연히 헛수고 할 것 같으니 포기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형사는 아니라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한다.

설사 오래된 사건이지만 피해자인 숙희의 뱃속의 아이와 피의자로 잡혀온 자의 혈액 검사 즉 말하자면 디 엔에이 검사만 하면 당장 범인을 잡아 낼수 있다며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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