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모의 세상보기(23)
‘별 것도 아닌데 봐주지 않는다’는 불평을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직위인 경찰의 총수가 어제 한 신문에 기고를 하였다. 역시 안전문제였다. 그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어 주목하게 되었고 그건 많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 같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부주의가 참혹한 결과로 나타나는 사고 현장을 접할 때 마다 결코 사소한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자주 느낀다는 것. 맞는 말이다. 안전문제에 더 이상의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사소한 신호위반이 대형 교통사고를 부르고 술집에서의 사소한 말다툼이 살인사건으로 번지고 사소한 부부싸움이 방화로 이어지고 이웃집까지 불태워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 뿐인가? 등산객의 사소한 담뱃불 부주의 하나가 온 산을 불태우는 대형 산불사고도 모두가 처음에는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한 나라 국민의 생활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바쁜 경찰청장이 투철한 안전정신을 지니고 그런 글을 신문에 기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국민 실망적 사건을 하나 살펴보자. 문화재청장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옛말에 ‘같은 돌에 걸려 두 번 넘어지는 자는 바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같은 실수, 같은 불행이 연달아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경고문과 같다. 그런데 두 명의 남녀 문화재청장의 옷을 벗긴 ‘숭례문 사건’에 국민들은 몹시 허탈하고 안타깝다. 극심한 배신감 마저 지울 수가 없다.
2008년 2월 10일 미친놈의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은 5년간 복구사업을 거쳐 올해 5월,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전통 방식대로 복원했다는 문화재청장의 호언장담은 사실과 달랐다. 완공된 지 5개월도 못가 기와는 깨지고 단청은 떨어져 나갔다. 기둥과 추녀 등의 목재도 뒤틀리고 갈라졌다. 단청공사에 천연 안료를 썼다고 거짓말했으나 일본서 수입한 값싼 안료를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부실 자재 사용, 명맥이 끊긴 전통 공법의 미숙한 적용 등 총체적인 부실의 합작이었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그렇게 중대한 사안은 아니라고 보며 사소한 일일뿐이다”며 안이하게 대처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그게 안전 불감증 아니고 무언인가!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온갖 국난(國難)을 꿋꿋하게 이겨낸 숭례문이 화마(火魔)에 쓰러진 것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사회에 각인시킨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번 부실공사 사건도 우리가 숭례문 화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도 모자랄 판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셈이다. 화재로 소실된 것도 통탄할 일인데 온 국민의 소망이 담긴 복원공사를 그처럼 허술하게 함으로써 숭례문을 두 번 죽였다.
청장 교체만으로 문화재 관리부실이 바로잡히지는 않는다. 국민의 자부심과 문화의 상징이었던 숭례문을 바로 세우고 다른 문화재의 보전과 관리에도 비슷한 부실이 없는지 철저히 따져보기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이 역시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안타까운 인재(人災)가 아닌가? 천추만대 영원불멸로 자랑스러워야 했을 국보 1호 숭례문의 참담한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생나무로 집을 짓고는 절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인간들의 안전불감증은 말없이 서 있는 국보 1호를 두 번씩 울게 하였는가?
조급한 사고방식, 얄팍한 상혼으로 국민을 속이고 국보(國寶)의 위상을 농락한 범죄 행위에 문화재청장들만 갈아치운다고 완치가 되지 않는다. 설사 시일이 더 걸리고 완공이 몇 년 더 늦추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인 규명에 발본색원을 하여 다시는 이런 수치스런 역사의 범죄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제일주의로 나가야 한다. 로마의 성당 하나가 완공되는데 100년이 걸렸다.
새로 복원된 숭례문의 부실시공 사건은 전적으로 새로 부임했던 여성청장의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이었고 그 여성 청장을 그 자리에 앉게 해준 대통령도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래 남성보다는 여성의 섬세함이 뛰어나고 집안의 도둑 예방도 남성보다는 주부인 여성이 더 잘 하는데 어찌하여 고의성이 다분한 부실시공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두 번씩 우울하게 만들었는가? 웅비(雄飛)의 자태로 우뚝 서 있어야할 대한민국 국보를 두 번이나 울게 하였나? 이제 누가 또 문화재청장 자리에 새로 오를지 모르겠다만 누구든지 이 칼럼의 서두에 쓴 이성한 경찰청장의 안전문제의 절대명언 같은 글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작가,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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