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환 | 쌍용양회 동해공장 환경안전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불러봤을 동요의 한 구절이다. 이는 1950~60년대 사회 전반의 실정을 대변한 구절이었다. 당시에는 가장 빠른 것의 상징이 ‘비행기’였고, 가장 높은 것은 ‘백두산’이었다. 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이 노래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주 시대라 불리는 작금의 21세기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 후보 중 하나는 ‘전기’다. 전기의 속도는 빛의 속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光速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실 이 광속보다 더 빠른 게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바로 ‘한국인의 급한 성격’이다. 얼마나 우리 민족의 성격이 급하면 한때는 이를 풍자한 농담이 유행을 하기도 했다. 잠시 이 농담의 한 토막을 들려주겠다.
도로가 막혔을 때 일본인들은 무슨 사연이 있는 걸로 판단하고, 신문을 읽으며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도로가 막히는 것은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신문을 다 읽고 나서 일본인들의 신문을 빌려서 읽는다고 한다. 여유를 넘어 게으름에 가까울 정도로 느긋한 대륙의 기질을 엿보게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민족성을 보여준다. 이 농담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에 신문을 갖고 다니는 것 자체가 없다고 한다. 차에서 신문 읽을 시간이 원래 없을 정도로 바쁜 민족이라서, 사고가 나든 교통 체증이 생기든 무조건 ‘어떤 놈이 길을 막았다’라고 생각하고 재빨리 내려서 상황을 확인하러 뛰어나간다.
비록 풍자가 섞인 농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의 성격이 매우 급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런 우리 민족의 급한 성격은 계절과도 부분적으로 관계가 있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날씨에 따라 농사가 판가름 났다. ‘봄’에 물이 있어야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때를 맞추어 서두르지 않으면 김매기나 파종을 할 수 없었다. 또 가을걷이도 마찬가지였다. 햇볕이 잘 드는 날을 기다렸다가, 빨리 추수를 하고 빨리 말려서 빨리 날라야 했다. 어찌하든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민족의 농사 방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환경이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 변화함에 따라 이 습성이나 기질도 변화했어야 하는데, 이것이 그대로 산업현장에 전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늦은 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꼴찌에게는 기회도 잘 주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빨리빨리 문화를 고착시키는 촉진제가 됐다.
그 결과 밥도 빨리 먹어야 되고, 일도 빨리 해야 되며, 심부름·운동 등 뭐든지 빨리만 해야 되는 사회가 바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시간을 잘 활용하라는 뜻의 “시간은 금이다”라는 속담이 지금 사회에선 빨리빨리 일하라는 뜻으로 변해 쓰이고 있다.
인력과 간소한 소도구가 중심이었던 농경사회에서야 빠른 작업 중 사고가 나도 그 피해가 국한적이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작은 사고도 큰 피해를 불러온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스스로가 급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급한 성격만 해소시키면 대한민국의 산업재해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는 서두르는 만큼 생명도 서둘러 단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빠른 작업은 필연적으로 ‘대충대충’과 ‘몰아서 하기’로 연결된다. 작업을 건성으로 하거나 무리하게 하면 사고 발생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다시 말해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서두름은 문 밖에 저승사자를 대기시켜 놓고 작업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부터 우리 국민 모두는 “내 급한 성격만 고쳐도 예상치 못한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조금은 느려도 확실하게 일을 진행하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