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진 | 그림, 김주헌
<제2회> 제1부 탐욕의 성(性)
라면을 끓이기 위해 올려놓은 냄비의 물이 끓어오르면서 가스레인지 옆으로 펄펄 넘치고 있었다. 준식의 마음이 조금씩 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라면을 먹고 전화를 해볼까? 아니야, 그동안이라도 어느 놈이 먼저 전화를 해서 결정이 되어버리면 나는 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릴 수도 있어. 나에게는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 경기 침체로 실업 사태가 늘어나면서 구인광고가 신문에 실려 나오면 신문 인쇄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벌써 구직자와 구인자 간에 협상이 끝나기 일쑤가 아니었던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준식은 더욱 조급한 마음이 들어 급하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구인광고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만….”
“아 네. 그 광고문 대로 조건이 맞는가요?”
“아 예. 그 조건이 대충 맞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 조건이 맞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상대편의 음성은 벌써 여러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는 뜻이 담겨 있었으나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서울 말씨의 30대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투에는 교만스런 느낌은 전혀 없었고 교양미가 깔려 있는 그런 느낌이 전해 왔다.
“그럼 언제 어디로 찾아가 뵈면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면 이력서 주민등록 면허증 사본 한 통씩 가지고 샤 롯데 호텔 커피숍으로 오후 한 시까지 나올 수 있어요?”
“예예. 나갈 수 있습니다. 가서 어떻게 찾으면 될지?”
“네. 프론트 아가씨에게 말해 둘 테니 걱정 마세요.”
라면 한 그릇을 씬 배추김치에 걸쳐서 후다닥 먹어치운 준식은 조금 전에 사온 싸구려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물었다. 그러나 샤롯데 호텔까지 가려면 적어도 왕복 버스 토큰 두 개는 있어야 한다. 하는 수 없이 옆집에 사는 4촌 누나 지영이 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 오늘 취직 시험 보러 가는데 돈 3만원만 좀 꿔줄래? 봉급 타면 지난번에 빌린 것까지 다 갚을게.”
“그래, 알았다. 아침밥은 묵었나? 안 묵었거든 어서 우리 집에 온나. 동생 니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 주께. 참, 숙모님 병세는 좀 어떻노?”
언제나 천사 같은 여자 지영이 누나는 웬만한 일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착하고 예쁜 여자다. 나도 저런 여자를 아내로 맞아야 될 텐데…. 늘 그렇게 생각해 온 준식은 지영을 친누나처럼 생각했고 급한 일 어려운 일 있을 때 마다 신세를 지고 있는 터였다.
지영이 누나!
누나는 그야말로 인간천사, 과수원집 외동딸로 자란 지영이 누나가 어느날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사색에 잠기던 옛모습이 준식의 뇌리에 꿈처럼 환상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주욱 털어 놓은 것은 준식이가 강간죄로 구속이 되어 경찰서에서 구치소로 넘어온 지 한 열흘쯤 된 어느 날 미결수 방에 있을 때였다. 그들 미결수들은 재판을 기다리느라 지루하고 답답한 하루하루의 시간을 깨트려 나가기 위해 구속되기 전 사회생활을 할 때 있었던 이야기, 그것도 남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여자관계 이야기 등을 간혹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한 바탕씩 웃고 그렇게 그들은 시간을 죽여 가고 있었다.
“그래서 장형! 이야기 계속 해봐요. 그래가지고 호텔 커피숍으로 가서 그 여자를 만났나요? 계속해 봐. 그 다음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니까….”
누군가가 한 마디 거들어 준식의 하다 만 이야기를 다시 듣자고 졸랐다.
“그렇지. 만났어. 만났으니까 내가 여기 들어온 것이고….”
“아니, 외제 고급 벤츠 승용차 타고 다니는 부잣집 마님 만나 취직 잘 했다면서 왜 장형이 감옥에 와요? 무슨 사고라도 났었나?”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