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A 50年史, 줄거리가 될 스토리 ⑪
두산전자 페놀사건은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 장관, 시장 경질은 물론 여러 사람 형사처벌
1991년 2월에는 평민당 이원배 국회의원 등 여러 사람에게 뇌물을 공여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3월 21일에는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원액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후 당국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사태는 악화되었고 부산과 마산을 포함한 영남 전 지역이 페놀 소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 당시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 정치권과 산업경제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앞의 한보그룹 정태수 씨의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은 우리 ‘대한산업안전협회’ 업무와는 다소의 거리감이 있다고 보여 생략하겠다.
그러나 두산그룹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은 너무도 경악스런 ‘안전불감증’ 사건이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대구시장, 보사관계 장관까지 경질된 1991년 3월에 발생한 그 낙동강 페놀방류사건은 안전의식을 완전 망각한 사건이었다.
악덕기업의 ‘기업이익을 위해선 국민들의 건강이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식의 의식, ‘수돗물은 소독약만 많이 넣으면 된다’는 식의 수질관리를 한 수도당국이 합작 연출한 사건으로 지적되었다.

두산전자는 90년에 5차례나 수질과 폐기물 점검을 받았으나 한 차례도 적발되지 않았고 소각로가 고장 난 90년 10월 이후에는 점검을 받지 않은 점을 이용, 페놀을 무단방류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속 소홀을 틈타 귀찮은 페놀폐수를 돈 안들이고 강물에 떠내려 보낸 것이다.
폐수처리시설이 고장 났을 경우에는 즉시 환경처에 신고해 특별관리에 들어가야 하나 두산전자는 이마저 기피하고 페놀폐수를 몰래 낙동강지류에 쏟아 부어 반사회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지탄받게 된 것이다. 두산전자는 이전에도 페놀폐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조금씩 낙동강으로 흘려보내왔으며 말썽이 나지 않자 이때 한꺼번에 쏟아 부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대구등지 주민들은 사업주의 승인 없이 현지공장에서 일방적으로 페놀폐수를 방류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공해무단배출업소를 적발하고도 하위관계 직원들만 처벌해온 당국의 처사도 문제라고 치를 떨었다.
특히 대구·부산시민들은 환경처와 대구시가 공장들의 무단배출을 단속하기는 고사하고 원수(源水)인 낙동강물에 다량의 페놀이 함유된 것을 왜 미리 발견하지 못했는지, 왜 페놀로 오염된 물을 그대로 사용해 클로르페놀이 대량 생성되어 수돗물에 섞여 나가게 했는지에 대해 분노했다.
이 같은 사태는 강물의 수질을 관리하고 있는 환경처와 상수도 원수로서의 적합여부를 조사 분석해야 할 대구시가 수질검사 항목에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페놀에 대한 검사를 전혀 하지 않았는가 하면 페놀이 섞인 물을 그대로 사용, 염소소독만을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구지방 환경청에 따르면 낙동강 대구상수도 취수장 상류에는 페놀이 섞인 폐수를 방출하는 업체가 68개나 있으며 그중 23개소는 많은 양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산(斗山) 규탄 확산
1천만 영남지역 주민들의 수돗물 불신이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배앓이 환자가 급증해갔으며 또 시민단체들은 수도요금 납부거부와 페놀을 방류한 두산그룹의 제품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그 파동이 확산되어갔다.
대구시민들은 그 사건의 주범으로 드러난 두산전자가 광고를 통해 페놀방류가 단순한 유출사고 때문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재벌기업의 속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노했다.

대구시민연합과 YMCA, YWCA 5개 시민단체는 대책회의를 갖고 규탄대회를 열었다. 따라서 낙동강 상류 공단지역에 대한 감시기구 구성 등을 논의했다. 또 대구실천시민연합도 ‘시당국은 폐수방류기업 엄중처리와 함께 정수과정에서의 업무태만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행정책임자인 대구시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대구시 수돗물사태 피해접수 창구’를 설치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고발하는 대구시민과 인근 경북지역 주민들의 신고가 쇄도했다. 아울러 그 사건으로 거의 노이로제 상태에 빠진 시민들이 강력한 시민운동을 촉구하는 규탄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아무튼 두산그룹 역사상 가장 뼈아픈 사건이 된 페놀방류사건은 정말이지 다시는 없어야 할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로 인하여 두산전자 공장장 등이 구속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두산에서 생산된 OB맥주 쏟아버리기와 두산제품 불매운동을 비롯해,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시위를 벌였다.
992년 1월 8일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30억원을 헌납했던 사실을 폭로하고 정계 진출을 선언하며 2월 8일에 통일국민당(국민당)을 창당하였다. 3월 22일 이지문 중위가 군 부재자 투표의 선거부정을 폭로한지 이틀만인 24일에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8월 9일에는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였고 8월 11일에는 과학위성 우리별 1호 발사가 성공을 거두었다. 8월 25일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민자당 총재직을 사퇴하였고 9월 18일에는 아예 민자당을 탈당한 후 같은 달 22일에는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였다.
10월 12일 해군은 최초로 우리나라 기술진이 건조한 잠수함인 이천호(李阡號)의 진수식을 거행하였고, 11월 12일에는 영종도에서 인천국제공항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12월 18일에는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당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다음날인 19일, 당시 민자당의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의원직 사퇴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1993년 1월 7일에는 청주의 우암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29명이 사망하고 4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편 2월 6일 검찰은 정주영 당시 국민당 대표를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였으며 3일 후인 2월 9일, 정주영 당시 국민당 대표는 대표최고위원직 사퇴와 정계 은퇴 의사를 발표하였다.
2월 25일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고 3월 6일 정부는 문익환 목사에 대해 사면조치 하였다. 3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이 핵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로 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내렸으나 북한은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였다. 4월 10일에는 영화 <서편제>가 개봉하였는데 당시 최다 관객을 동원하였다. 6월 17일에는 한의사 700여명이 정부의 약사법 개정시안 내용에 반발하며 면허증 반납을 결의하였고 6월 27일에는 감사원에 의해 안기부에 대한 감사가 최초로 이루어졌다. 7월 26일에는 아시아나 항공기가 전남 해남에서 추락하여 6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헌법재판소는 7월 29일, 국제그룹의 해체(1985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8월 7일에는 대전엑스포가 개막하였고 같은 달 20일에는 경부고속철도의 차종이 프랑스 알스톰사의 떼제베(TGV)로 확정되었다. 10월 10일에는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서해페리호가 침몰하여 배에 타고 있던 29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페놀이란 무엇인가?
석탄산 이라고도 하는데 빛깔이 없는 결정체로 물에 녹으면 약한 산성을 띠고 쏘는 듯한 맛이 난다. 방부제·소독제·합성수지 원료로 쓰이며 두산전자에서는 전자제품의 기판원료로 사용하였다. 사람이 먹으면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피부에 닿으면 발진이 생기고 체내에서는 소화기와 신경계통에 장애를 주며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특정유해물질로 분류돼 있다.
음용수에서 페놀농도기준은 0.005ppm 이하이며, 배출허용기준은 5ppm 이하로 규정돼 있다(당시 보사부 음용수 기준). 페놀이 살균제로 쓰이는 염소와 결합되면 클로로페놀로 변해 독성이 수백 배 더 강해진다. 또 페놀이 0.2ppm 이상이면 그 물에서 서식하는 어패류에서도 악취가 난다. 페놀은 물속에서 1주일 정도 지나야 분해되며 활성탄으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페놀이 얼마나 독한 유해물질인지를 알아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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