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진 | 그림, 김주헌
<제3회> 제1부 탐욕의 성(性)
그때 옆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부도 사건으로 들어온 손영락 사장이 또 거들었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기가 막힌 사연이지요. 여러분들 혹 위장 강간이란 말 들어 보았습니까?”
“뭐, 위장 강간이라니요?” 음주운전으로 들어온 이하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래요. 나의 죄명은 강간이지만 위장 강간이라는 특이한 사연을 안고 있어요. 한꺼번에 다 이야기 해버리면 싱거우니까 오늘 저녁 텔레비전 방송이 끝나면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테니 한번 들어보십시오. 무슨 소설 같고 영화 스토리같이 꽤 재미가 있을 겁니다.”
그날 저녁 TV 뉴스가 끝나고 야식 시간이 되자 배식 반장이 과일이랑 오징어랑 과자를 내려놓았다.
“자, 우리 이거 묵으면서 준식씨 낮에 하다가 만 그 위장 강간 이바구 좀 들어봅시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잘하는 그는 참으로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장형이 말하는 그 위장 강간이란 용어가 참 이상하군요. 그 속에 뭔가 특수한 사정이 숨겨져 있는 듯싶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위장 이혼이니 위장 취업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위장 강간이란 말은 못 들어봤는데….” 조폭 이덕훈 이가 거들었다.
“예,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감추고 자시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 털어 놓을게요….”
오징어포를 쭉 찢어 입에 문 준식은 그야말로 어느 멜로드라마와 같은 자신의 구속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영이 누나에게 돈 3만원을 빌려 나오면서 아침에 집에서 주머니에 오려 넣어둔 생활 정보지 그 구인광고를 다시 꺼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조건인 건강한 독신 남자, 그리고 일곱 번째 능력 봐서, 라는 대목이 자꾸만 나의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자극 하더라 구요.
물론 능력에 따라 대우하겠다는 취업 조건이 있을 수가 있지만…. 그리고 또 성씨가 꼭 장씨라야 된다는 조건도 좀 이상했지만, 아무튼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롯데 호텔 앞까지 가면서 자꾸만 쓴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누가 그때 만일 내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약간 실성한 또라이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난 속으로 그랬어요. 차 운전이든 여자 운전이든 맡겨만 다오. 내 온몸을 불살라 봉사해줄 테니까…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눅이 들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가난에 찌든 위축감이었을까. 준식은 무슨 습관처럼 대형 빌딩이나 고급 호텔 같은 곳에만 들어가면 화장실부터 찾는 버릇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흡연장을 찾고 거기에서 담배부터 한 대 피우고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등 뒤를 스쳐가는 고급 양복 입은 딴 손님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왠지 화려하고 웅장한 이런 고급 호텔과 자신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기 일쑤고 싸구려 담배를 감추고 다니면서 피워야 하는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업자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심정을 잘 모른다. 그러나 사나이 대장부는 냉수를 마시고도 이빨을 쑤셔야 한다는 옛 말을 상기하면서 어깨를 쫘악 펴고 당당한 걸음으로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전화에서 약속한 대로 나는 프론트에 가서 아가씨에게 아침에 통화한 그 여자 분을 찾았습니다. 하얀 바바리코트를 옆 의자에 걸쳐두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아이보리색 투피스 정장 차림의 그 여자는 옷차림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검소한 차림이었으며 전화 통화에서 느낀 대로 교양미도 있었고 거만스럽지 않은 겸손과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고요, 얼굴도 그렇게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어디 나서도 빠지지 않을 보기 좋은 인상이었어요.”
얼른 보면 예쁜 탤런트를 닮은 깨끗한 이미지의 얼굴이었으며 하얀 피부에다 웃을 때마다 양쪽 볼에 작은 보조개가 살짝 패이고 있는 꽤나 지적이고 귀족형으로 기품이 있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실내에서도 검은 썬그라스를 끼고 있었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