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진 | 그림, 김주헌
<제9회> 제1부 탐욕의 성(性)
천하에 사기꾼 같은 그 인간은 속초에서 강릉까지 가면서 내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얼마나 징그럽게 구는지 그 놈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버리고 싶었지만 난 꾹 참고 헛웃음을 웃어 주었지. 두고 봐라, 이 인간아. 난 너를 평생 동안 성 불구자로 살도록 그것을 오늘밤 깨끗이 제거해 버릴 것이니까…하고 속으론 이를 갈았어.
그래서 나는 모른 척 하고 따라 갔지 그리고 바닷가에 가자마자 나는 그 인간과 같이 걷고 싶지 않아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혼자 방파제 위를 한참 거닐면서 생각을 했어 한번쯤 용서를 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되더군.

그때만 해도 젊었고 용기도 있었지만 한편 사람이 절망의 밑바닥에 떨어지니까 독한 마음이 생기더라구. 준비해 간 캇트 칼이 내 주머니에서 파란 날을 새우고 있음을 그 인간은 몰랐겠지. 저런 더럽고 치사한 인간은 죽여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남자 구실을 못하게 그것을 잘라 버려야 그 처참한 고통을 안고 평생 끙끙거리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그런 잔인한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니까 짜릿하고 이상한 쾌감마저 들었어.
그것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 잘 모를 거야. 그때 내가 너무 심한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견딜 수 없는 배신감에 치가 떨렸고 오로지 잔인한 복수심만 불타 올랐어. 그 때 내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한 걸까? 근데 인간은 말이야 누구에게나 동전의 양면성 같이 선과 악의 심리가 잠재되어 있는 것 같아 준식인 그렇다고 생각 안해?
준식은 그녀의 말에 싱긋 웃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긴 한숨을 쉬었다.
“자 우리 저기 바닷가 방파제로 나가 바람이나 좀 쐬고 올까?… 옛날에는 저런 방파제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부는 앞 바닷가 방파제로 나갔다.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하얀 바바리를 입은 숙경의 목에 두른 연보라색 스카프가 무슨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었으며 30후반의 여인 치고는 너무 아름다웠다.
“준식인 바다를 보면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라?…”
“글쎄요. 이 세상의 모든 고뇌를 다 씻어갈 수 있는 그런 능력과 아량을 지닌 창조주의 큰 선물이 아닐까요? 바다는… 특히 웅장한 일출 때 바라보는 바다는 인간에게 무한한 희망을 안겨주고…”
“그래 맞아. 그리고 바다는 말이야. 우리 인간에게 많은 걸 가르치고 있지. 우선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느냐 보다 적은 것을 가지고두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 즉 마음의 여유 말이야. 그러면서 언제나 엄마의 품속 같은 푸근함, 그런 포용력으로 인간에게 무한한 창조를 위한 침묵이나 어떤 포부같은 걸 가르치고 있지 않나 생각해.
언제나 저렇게 출렁이는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설레 이게도 하구… 더욱이 난 이곳 양남 앞 바닷가는 어린시절 문학소녀 꿈을 키우던 그 시절의 남다른 추억을 안고 있지. 그래서 오늘 사실은 이곳에 와 보구 싶었던 거야.“
“어릴 때 추억이라니요?…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응. 우리 외할아버지는 참으로 자상하셨지. 아까 차타고 올 때도 잠시 얘기했지만 내가 중학 3년 여름방학 때 엄마따라 이곳 외가에 온 적이 있었어. 그 때 할아버지는 가끔 내 손을 꼬옥 잡으시고 이 바닷가를 산책하셨는데 내가 예쁜 조약돌을 주워오면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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