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진 | 그림, 김주헌
<제10회> 제1부 탐욕의 성(性)
‘야(얘)야, 숙아! 이 조약돌 있제, 이것들이 다 동글동글하게 니 얼굴같이 곱고 이뿐 것은 힘센 대장장이나 어떤 조각가가 깎고 뚜드려서 만든기 아이데이. 오랜 세월 파도에 씻기고 달아서 요렇게 반들반들하고 동글 납작 한기라. 이런 거를 두고 자연의 섭리라 카는데 사람도 말이다 지아무리 모가 나고 날카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저 부더럽고 자비로운 파도 같은 손길로 잘 쓰다듬어만 주면 이런 조약돌처럼 다 이뿐 원형으로 된단다.
그라이 숙아! 니도 이 담에 커가주고 시집가서 아이들 나믄 아이가 잘 못해도 무서운 매질로 다스릴라카지 말고 저 파도같이 꾸준한 사랑의 손으로 키우거래이. 그라고 바다는 자세히 보고 있으면 우리 인간에게 참는 것을 가르치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친단다.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알았제 숙아!’ 그 때 이름은 숙이였거든. 경숙이. 그 오묘한 철학과 진리가 담긴 말씀이 오늘따라 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네.

그렇던 우리 외할아버지께서는 우연히 울산 방어진 지금 현대중공업 부근 항 어디서 선박 수리사업을 하시다가 회사 재산 몰래 빼돌려 팔아온 심술 고약한 인간들로부터 배신과 모함을 당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셨고 그 때 화병을 얻으셔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대학 2학년 때 하염없이 울었던 일도 있었어.
헤밍웨이가 쓴 ‘바다와 노인’의 소설 주인공 「센디아고」 같았던 우리 외할아버지는 저 세상 가셔도 좋은 곳에 가셨을 꺼야. 심성이 참으로 착하고 인정이 남달랐던 어른이니까. 그런데 난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애를 낳아 사랑으로 키우라시던 그 말씀의 약속을 못지켰어”
“왜요? 결혼해서도 처음부터 애기가 없었나요?”
“그래요. 이상하게 나는 한번도 임신을 못해봤어. 어떤 친구들 말을 들으면 남편과 이불 속 사랑을 나눌 때 가장 뜨겁고 가장 흥분하고 황홀할 때 아기가 생긴다던데 난 아직 그런 경험을 못해봤거든. 말하다 보니 너무 찐했나? 하.하.하”
어느새 저만치 서쪽 하늘에서는 서서히 장엄한 일몰로 아름답고 찬란한 황혼의 핏빛 햇살이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숙경은 방파제 위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바닷물에 던지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준식이. 이 세상에 아무리 값이 비싼 유명한 고호나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저렇게 멋지게 붉게 물든 저녁바다 노을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없을 거야. 그치? 난 말이야 태양도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한낮의 태양보다는 저렇게 노을이 빨갛게 물든 석양의 낙조가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인간도 말이야 힘이 세고 무서운 것 없는 젊은 시절보다는 나이가 들고 삶의 희로애락의 맛을 다 체험한 그런 노련미가 깃든, 말하자면 완숙기에 접어든 노후 인생이 더 멋질 것 같아. 어때 내 말에 일리가 있지?”
“예. 듣고 보니 그런데요.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꽃도 이른 봄에 피는 진달래나 개나리도 예쁘고 아름답지만 늦가을 뭇서리를 이고 핀 국화 꽃송이가 세찬 바람에도 꼿꼿이 살아 마지막 고고한 향기를 뿜어 내려고 처연하게 몸부림 치는 한떨기 샛노란 국화꽃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했더군요.”
“그래.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멋진 문학적 표현이네. 사람도 나이가 들어 늙어 갈수록 더 깨끗하고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듯이 젊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그치?”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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